하나님의 용서는 인간들의 용서의 출발
상태바
하나님의 용서는 인간들의 용서의 출발
  • 운영자
  • 승인 2009.08.19 17: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경승교수<아신대·관계상담>


사람들은 거절당하면 반항하게 되어있다. 물론 반항은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혼자서 마음속으로 간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반항은 겉으로 드러나게 된다.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 청년기와 그 이후에도 반항했던 경험들이 있다.

사람들은 반항하면서 정서적인 면에서 적개심과 자만심의 벽돌을 쌓으며 궤변으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지적인 면에서 반항은 우월의식, 경쟁의식, 군림, 완고함 등의 벽돌을 쌓게 한다. 영적인 면에서 반항은 망상, 비통, 분개 등의 벽돌을 쌓게 한다.

그러나 하니님은 반항하는 인간들을 향해서 용서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이다. 모든 인간들은 거절로 인해서 상처받고 이것에 대해서 반항하면서 교만과 탐욕의 죄를 짓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을 용서하시며 긍휼을 베풀어주신다.

하나님의 용서는 인간들의 용서의 출발이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큰 것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을 용서하지 못해서 생겨난다.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도 용서를 실천해야 한다.

용서를 실천하는 일은 두 가지 범주이다. 첫 번째 범주는 우리는 우리에게 죄를 지은 자를 용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먼저 용서하신 것처럼 그 분을 본받아 용서를 실천하는 일이다. 두 번째 범주는 우리는 우리의 명백한 잘못과 범죄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해야 한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나 모든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탐욕과 교만으로 인한 죄나 그것의 결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우리는 용서를 구해야 한다.

용서부분에서 사람들의 결정적인 실수는 상대방의 잘못으로 인하여 받은 상처만을 기억하면서 자신을 피해자의 입장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큰 상처를 받는 것은 피해자 입장보다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나의 잘못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때이다.

용서는 추상적이고 언어적인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진정한 용서는 실천적인 영성으로 구체적으로 용서하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 일이 많아야 한다. 사람들은 용서의 원리와 소중성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분명한 깨달음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속한 공동체인 가정과 교회에서 용서의 실천이 왜 빈약한가? 그 원인은 입술로는 용서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지만 구체적인 용서의 실천은 부족해서 성장하는 자녀들은 그들이 속한 공동체에서 용서의 실천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도 용서를 실천해야 할 때 하지 못한다.

또한 인간을 불행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사건의 대부분은 아주 사소하고 작은 문제에서 출발한다. 큰 잘못은 용서를 하면서 작은 잘못은 용서하지 못해서 갈등이 생겨나고 그 갈등이 중폭되어서 큰 불행을 만든다.

용서하는 마음은 사람들의 마음에 천국을 만들지만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사람들의 마음에 지옥을 만든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내오는 장발장은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하고 나오지만 아무도 환영해 주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신부가 장발장을 환영하면서 그에게 맛있는 저녁식사를 대접한다.

그러나 그에게 남아있는 옛사람의 성품은 그로 하여금 그 집에 있는 은촛대를 훔치게 한다. 그는 결국 경찰에 잡히는데 그를 잡아 온 경찰에게 신부는 자신이 그 은촛대를 선물했다면서 은혜를 배반한 장발장을 용서해 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