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회심은 총체적 변화와 함께 제자도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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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회심은 총체적 변화와 함께 제자도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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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8.1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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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덕만교수<복음신학대학>


회심은 구원의 첫 관문이다. 그렇다고 회심이 기독교의 전부도 아니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회심은 구원이 필요한 모든 인류에게 결정적 사건이며 경험이다.

한국기독교는 한국의 주류종교로 입지를 굳건히 했고, 영향력도 급증하고 있다. 반면, 한국사회는 다양한 영역에서 문제와 한계를 노출하며,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회심을 통해 한국교회가 자기갱신에 성공하고, 주어진 사회적 책임을 온전히 수행하는 것이 더욱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상의 역사적 관찰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먼저, 한국교회는 회심의 다양한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회심을 개인적 혹은 영적 차원에 한정하여 이해해왔다. 그러한 획일적 이해 때문에, 한국사회 속에서 교회는 자신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었다.

하지만 회심은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 영적 차원과 물리적 차원을 동시에 지닌다. 개인이 영적인 존재이면서 육적인 존재이듯이, 또한 개인과 사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의 영적 회심은 물리적 삶에 영향을 끼치고, 개인의 변화는 사회의 변화로 연결된다. 이런 면에서 한국교회는 회심의 다양한 의미와 차원을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둘째, 한국교회는 진정한 회심을 추구해야 한다. 회심은 단순한 감정적 체험, 혹은 지적 동의 이상의 차원을 지닌다. 회심은 삶의 근원적 변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회심을 파편적으로 이해한다.

진정한 회심은 성도의 총체적 변화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주님을 따르는, 진정한 제자도로 표현될 수 밖에 없다. 결국 한국교회가 많은 수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충격 및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미진한 것은 그 많은 교인들 중에 진정한 회심을 체험한 ‘진정한 신자’(real Christian)가 적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피상적 차원의 회심을 극복하고, 진정한 차원의 회심을 추구해야 한다.

셋째, 한국교회는 회심의 구체적 결과를 증거해야 한다. 많은 경우, 우리의 회심이 지적, 심리적, 혹은 정서적 차원에 머물곤 한다. 그러나 진정한 회심은 매우 현실적이며 구체적이어야 한다. 행위 없는 믿음이 죽은 것처럼, 실천 없는 회심은 무의미하다. 회심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라면, 하나님을 향해 방향을 돌이키는 것이라면, ‘나’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극적인 전환을 이루는 것이라면, 그 거듭남, 돌이킴, 그리고 전환은 삶 속에 구체적 변화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개인적 성품, 가치와 목표, 삶의 방식과 태도 등에서 뚜렷한 변화가 나타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동안 한국교회가 회심의 결과를 교인의 교회출석에 한정하고, 교회생활에 열심을 내는 것으로 만족했던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끝으로, 한국교회는 지금 회심해야 한다. 회심이 과거의 일회적 사건일 필요는 없다. 또한 미래의 모호한 비전으로 연기될 이유도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회심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야 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신앙은 항상 종말론적이어야 한다. 언제나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진지한 의식 속에 살아야 한다.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날마다 죽고 다시 사는 체험을 해야 한다. 따라서 어제의 실패에 함몰되어 절망 속에 방황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긴장을 풀고 타락해서도 안 된다. 폴 틸리히의 말처럼, 우리는 ‘영원한 현재’를 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회심과 씨름해야 하는 일차적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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