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과 이해로 얻는 신뢰
상태바
설득과 이해로 얻는 신뢰
  • 운영자
  • 승인 2009.07.01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인찬목사<의왕중앙교회>


인류는 약속을 근거로 존재하고 발전해 왔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시고, 그 피조의 세상과 언약하심으로 세상이 언약의 원칙아래 존재하며, 그 존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하나님께서 창조의 현장에 사람을 지으시고, 피조물의 대표로 세운 사람과 언약을 맺으시므로 하나님과 인류와의 언약을 기초로 인간은 삶의 법칙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과 우리사이는 언약을 성실히 지킬 의무가 생겼고, 그 언약의 파기자는 그 책임을 져야하는 상호 관계가 된 것이다.

크나큰 번민 없이 눈으로 보는 대로, 귀로 듣고 느끼는 오감의 반응에 따라 허망한 실익을 쫓는 무책임한 행동을 사람이 함으로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신뢰는 무너졌고, 신뢰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분노와 실망이 비례되어 인간은 끝도 없이 추락하였다.

에덴에서의 신뢰 파기는 우리의 피를 따라 유전되어 흐르고, 신뢰 그리고 믿음은 절대성을 잃어버린 채, 생각이나 관념적인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으며, 약속의 말과 생각이 사람들은 의식과 무의식의 현실 속에서 구속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힘없는 도덕적 요구 그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

인간은 신뢰에 대하여 부정적인 존재로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신뢰하는 일이란 너무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신뢰는 언제나 상호간의 관계 속에서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누구에게 신뢰를 받는 것도 무한히 중요하지만, 내가 누구를 신뢰하는 일이란 더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한 일이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신뢰보다 불신을 더 신뢰하며 살고 있는 우리들은 만인 평등을 근간으로 하는 법도 같은 의미에서 신뢰하지 않는다. 법조문의 정신과 의미를 신뢰하지 못한다기보다 이 신뢰하지 못할 사람들에 의하여 그 법이 적용되고, 운용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공동체마다 그 공동체 나름의 성격이 있고, 그 성격에 따라 유지 내지는 존재의 법칙이 있게 마련이다.

그 공동체에 대한 신뢰는 그 공동체를 유지발전하게 하고, 힘 있게 하는 동력원이 된다. 또한 그 어떤 공동체의 신뢰도는 그 구성원 간의 신뢰와 공동체의 비전 등이 밑바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나 그 구성원 상호간의 신뢰를 조성하고, 유지시켜 가는 일은 그 공동체의 지도자들의 몫이며, 지도자의 능력이 될 것이다.

지도자는 객관성에 기초한 리더쉽을 가져야 한다. 그 객관성이 지도자로서의 덕목이 되고, 지도력을 극대화시키는 힘의 원천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공동체에서 있었던 일이다.

서로 다른 견해가 팽팽하게 대립했다. 서로 생대의 객관성의 결여를 지적했다. 그 공동체의 장과 차석 지도자간의 견해 차이는 극명했다. 최고책임자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집약된 의사(意思)라도 자신에게 거부권 내지는 결재권이 있다고 주장하고, 차석 지도자는 그것은 독선이고 민주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 공동체의 말석에 있는 필자는 양쪽의 의견이 모두 옳게 보였다. 그 기관의 최고 책임자는 자신의 경영권 안에 있는 구성원들 간의 의견의 일치를 이룬 집합적 견해 또는 결의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구성원 중의 한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최고책임자로서의 위치에서의 결제요 의견이며 또한 그만의 실질적인 책임과 그 위치에 있다고 했다. 또한 차석 지도자와 구성원들은 절차상 비민주적 절차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생각과 다름을 최고지도자의 전횡으로 여기고,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과 전문성에 있어서 자신들의 우위를 확신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여기의 숨은 상황이 필자로 하여금 가슴을 아프게 했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것은 차석 책임자가 구성원들 간의 의견을 집약하는 과정에서의 비민주적 태도이다. 그 구성원들 간의 의견은 일치하지 않았었다.

장로교 각 교단마다 총회의 계절이 다가 오고 있다. 총회마다 신뢰를 강요하고, 신뢰를 불신과 힘으로 얻으려는 어리석음과 자본주의 신(神) 맘몬(Mammon)의 논리에서 벗어나 영혼과 생각과 행동의 자유를 주님의 의지와 교훈 안에서 온 몸으로 신뢰를 보내고, 받는 그 날을 기대한다. 이것은 어리석은 기대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