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 그리스도의 평화에 충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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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 그리스도의 평화에 충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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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2.0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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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목사<비폭력평화물결 공동대표>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전쟁에 대한 다음의 세 가지 태도를 취해왔다. 원시기독교적 평화주의, 의로운 전쟁론, 그리고 거룩한 전쟁론이 그것이다.

오늘날 역사평화교회들인 퀘이커, 메노나이트 그리고 형제교회가 잇고 있는 원시기독교 평화주의는 로마군인과 황제에 대한 충성과 맹세는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조화될 수 없어서 군복무를 거절하였다. 이것의 근거는 십계명의 다른 신을 숭배하지 말라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그리고 그리스도의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에 의한 것이었다.

의로운 전쟁론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십자가를 전쟁의 상징으로 처음 사용하여 이긴 후 밀라노 칙령(313년)을 통해 지하(카타콤)종교였던 기독교를 국가종교 더 나아가 제국종교로 바꾸면서 서서히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다른 종교들이 누리던 특권을 국가종교로서 기독교에 이양하면서 기도교인들은 국가에 대한 불안과 무관심한 충성을 버리게 되었고 로마제국의 유일한 국가종교로서 기독교를 지키기 위해 군복무와 전쟁참여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정치관행들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기독교의 가장 나쁜 유산은 아마겟돈의 전쟁 혹은 십자군전쟁이라는 이데올로기이다. 여기에서 전쟁은 ‘거룩한 전쟁’이 된다. 여러 유보조건들이 고려된 마지못해 하는 전쟁이 아니라 전쟁은 하나님이 흡족하게 여기는 적극적인 개념으로서 전쟁이 된다. 십자군 전쟁에 전사한 병사들은 그들이 그동안 저지른 모든 죄는 사해지고 영웅으로 숭배 받게 된다.

그들이 흘린 피로 그들은 천국이 보장된다. 왜냐하면 그 전쟁은 하나님의 원수들을 섬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전쟁에는 이슬람과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정당한 전쟁’의 기준들을 위반하는 일들이 허용된다. 부시대통령이 대표하고 있는 기독교보수주의진영이 말하는 ‘악의 뿌리’ ‘불량국가’ ‘적그리스도’는 이 십자군의 정신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최소한 ‘방어용’으로서 핵무기에 대한 논쟁을 놓고 볼 때도 핵전쟁은 의로운 전쟁이 아니라 거룩한 전쟁의 개념 속에 포함된다. 왜냐하면 핵전쟁은 필연적으로 무고한 자들에 대한 파괴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적의 진영에 있다는 것으로 인해 그들은 적으로 간주되고 함께 멸망해야 하는 필연적인 논리를 갖게 된다. 어디든 안전하지 않고 누구든 공격대상이 된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평화’에 대해 충실해야 한다. 진정한 평화는 공포의 균형과 위협의 맞대응이라는 군사 안보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이제는 대안으로서 인권과 정의로운 사회구조에 기반한 인간안보(human security)와 동북아 시민세력에 의한 공동안보라는 대안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 테러와의 전쟁이 준 결과는 오히려 무장을 주장하는 이슬람근본주의 부흥을 가져왔고, 아프가니스탄에서 개시 몇 개월만의 전쟁 끝이란 선언이 무색하게도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은 오히려 점화되고 이미 3조의 돈이 들어갔다. 이라크를 여기에 더하면 가히 천문학 숫자이고 이것이 지금의 미국을 휘청거리게 하고 있다.


핵의 문제는 단순히 북핵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핵의 생산은 이미 수차례의 미국의 핵위협과 매년 공격적인 한미전시훈련, 미일동맹군의 전시훈련의 결과라는 점을 우리가 일부 시인한다면 한반도 전체를 둘러싼 비핵화의 해결 없이는 가시화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동북아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이 시민사회의 한 핵심인 종교계의 지도적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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