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나눔으로 ‘천국’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상태바
사랑나눔으로 ‘천국’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 정재용
  • 승인 2009.01.21 15: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65일 사랑나눔의 현장 (하)

■ 사당역 14번 출구에서 무료급식 사역하는 ‘따스한 아랫목’


올 겨울은 유난히도 사랑을 나누는 손길들이 많아 여기저기 따뜻한 소식들이 풍성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새해가 밝고 겨울의 막바지가 다가오니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돕자는 목소리들도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다. 따뜻했던 손길에 감사하며 이번 겨울을 지낸 사람들은 그런 감동을 다시 느끼기 위해 1년을 꼬박 기다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차가운 길 위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자부터 물이 없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들까지 궁핍한 삶들을 돌아보기는 커녕 풍족하지 못하다고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아이러니한 모습들도 만연하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지구촌 최악의 경제위기라는 목소리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이때, 작은 것에 더 많이 감사하고 더 많이 나눠야 할 때가 아닐까. 더불어 사는 지구촌, 더불어 사는 한국은 아마도 1년 365일을 겨울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1년 365일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넘쳐날 때 실현 가능할 것이다. 2009년을 시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들이 더 이상 추운 겨울에만 펼쳐지는 이벤트가 되지 않고 우리 삶의 일부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365일 사랑을 나누는 현장의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김씨 오랜만이야. 지금 올라가지마. 밖에 엄청 추워. 여기 있다가 시간 되면 올라가자고.”

12일 오전 9시 2호선 사당역. 월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여느 때보다 더 번잡해 보이는 지하도에 두터운 잠바를 껴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여기저기 벤치에 자리 잡고 앉는다. 이른 아침 추위를 피해 지하도에 모인 이들은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같은 시간 14번 출구 앞.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는 족히 될 듯. 지하도에서 나오자마자 온몸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30분쯤 지났을까. 지하도에 모여 있던 사람들까지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금방 50여명으로 불어났다.

그리고는 곧이어 젊은 청년들이 손수레에 밥과 반찬을 싣고 나타났다. 그 청년들은 익숙한 듯 모여있는 이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며, 조그만 공원을 그들만의 뷔페식당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이들은 ‘따스한아랫목(대표:오진권집사ㆍ온누리교회)’ 봉사자들로 매일 아침 10시 사당역 14번 출구에서 독거노인과 노숙자들을 위해 무료급식을 진행하고 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러게 오랜만이네. 내가 어디 좀 다녀왔어.” 모여 있던 사람들은 14번 출구 옆 벤치 주변으로 조그만 간이의자를 하나씩 보기 좋게 놓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식탁을 직접 준비하는 것. 한 끼 식사를 위해 많게는 150여명이 모이지만 일손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 팔을 걷고 나서게 된 것이다.

음식을 올려놓을 식탁도 모두 차려지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침식사를 위해 찾은 사람들이 제법 길게 줄을 섰는데 배식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국이 도착을 안 한 것이다.

그때 멀리서 반팔 차림의 한 아주머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 수레를 힘차게 끌고 나타나셨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오늘은 많이 안 오셨네. 맛있게 드세요.” 뜨거운 국 수레를 끌고 오던 열기가 금방 식어버렸는지 냄비 위에 올려져있던 잠바를 얼른 주워 입고 사라지셨다. 국이 도착하자 봉사자들이 모여서 기도를 한다. “하나님! 하나님! 감사합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허락하시고 또 오늘 하루를 이렇게 살아가게 하시니…, 아멘!”

“많이 추우시죠? 맛있게 드세요!” 숟가락을 나눠주는 여대생. “드시고 또 더 드세요.” 밥을 한가득 퍼 담아주시는 아주머니.

“오늘 나물이 아주 맛있어요. 남기지 말고 다 드세요.” 반찬을 담아주시는 아주머니.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국을 퍼주는 건장한 두 청년.

이들과 한 번씩 인사를 나눈 사람들은 식판을 들고 자신들이 차려놓은 식탁에 앉아 지난 밤 추위와 함께 아침잠을 깨웠던 시장기를 달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사당역 14번 출구 앞. 언제 영하의 날씨로 추위를 느꼈었는지 활기가 돌고 열기마저 느껴지기 시작한다.

밥을 퍼주시던 아주머니는 “오늘은 짱구할머니가 안보이시네?”라며 보이지 않는 이들을 걱정한다. 그러자 옆에서 반찬을 담고 있던 아주머니가 “날씨가 추워서 못 오시나봐. 날씨 좀 풀리면 오시겠지”라며 걱정을 덜어준다. 교회 친구인 두 아주머니는 따스한아랫목 이야기를 듣고는 그날로 매일 아침 14번 출구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숟가락을 나눠주던 여대생은 호주에 사는 교포인데 한국에 들렀다가 지난 연말부터 봉사를 하게 됐다고 했다.

“저는 요즘 천국에서 살고 있어요. 이분들을 섬기며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 몰라요. 한국에 있는 동안 매일 아침 나오려고요.”

이 여대생의 고백처럼 작은 천국인지도 모를 사당역 14번 출구. 이곳이 천국이 되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주변에 있는 가게들이 매출이 떨어진다며 협박을 하고, 구청과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한바탕 소란을 겪기도 했다.

결국 주변 가게들에 매달 적지 않은 돈까지 쥐어주면서 무료급식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자리를 잡은 이들의 사랑 나눔 실천은 1년에 설날과 추석 딱 이틀만을 쉴 뿐 계속되고 있다.

또한 누구하나 매일 아침 나와 달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언제나 부족하지 않은 봉사자들의 사랑까지.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작은 천국을 위해 조그만 나눔과 섬김의 사랑들로 축복을 더하시고 계셨다.

따스한아랫목 강현주과장은 “요즘처럼 서로들 자기가 더 불우한 이웃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나라 안팍의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면 누가 그 말씀을 따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며 “그래도 매일 아침 급식을 위해 함께 기도로 시작할 수 있는 봉사자들이 있어 감사할 뿐이다”고 전했다.

‘자신의 얼굴은 사진에 나오면 안 된다’던 젊은 청년, ‘우리 가족은 내 뒷모습만 봐도 알아차린다’던 아저씨, 지팡이를 짚고 지하철 계단을 겨우 올라오신 할아버지, 어쩌면 매일 아침 10시 사당역 14번 출구를 찾는 사람들은 따뜻한 밥이 아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따뜻한 사랑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