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과 융합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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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과 융합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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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1.0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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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목사<한국오순절교회협의회 대표회장>


‘예(禮)’는 버릇이다. 버릇은 사회적으로 약속해놓은 생활양식이라는 일종의 법이다. ‘예’는 삶이다.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다. 지식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행동방식의 사회적 약속이다. 의사소통은 말과 짓(행동)이다. ‘예’는 의사소통의 표현이다.

‘예’가 없는 자는 더불어 살 수 없다. 지구촌 한 마을 시대는 수직적인 억압된 질서가 아니라 수평적인 평등의 질서 속에서만 상생이 가능하다. 그래서 ‘예’가 더욱 중요한 이유가 된다. ‘예’가 없이는 평등이 없기 때문이다.

지구촌 한 마을 시대에는 평등한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민족이든 문화든 그 유일성과 전통적 가치를 소중하게 보존해 주는 다양한 민족적 문화적 더부살이가 필요하다. 여기에 ‘예’의 가치가 빛나는 이유가 있다. 미국의 약점은 지나친 개인주의 때문에 버릇이 없다는 것이다. 911테러이후 급속히 형성된 미국의 시민국가주의가 중동의 인종적 민족주의와 충돌하면서 미국의 시대가 스스로 막을 내리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예’는 남을 존중할 때 나타나는 의사소통의 방법이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융합을 의미한다. 화학적 융합이든 물리적 융합이든 지구촌시대는 융합의 시대다.

지구촌 한 마을 시대는 다양성과 융합의 시대다. 문제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의 무례한 고집이다. 아프간 사태나 이라크 사태나 아프리카나 발칸반도의 인종 분쟁도 다양성을 부정한 무례한 근본주의자들의 아집 때문이다. 기독교가 수세기동안 백인우월주의 문화에 편승하여 다른 종교, 다른 인종, 다른 문화를 무시하는 무례한 행동을 범했다. 이를 인정하고 회개하여 모든 문화와 종교를 존중해주는 ‘예’를 갖추어야 지구촌 선교가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기독교의 유일한 구원의 진리를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종교에 대해 ‘예’를 갖추어 대하자는 뜻이다. 농경사회든 산업사회든 정보화 사회든 그 어떤 사회에서도 구원의 길은 예수의 십자가 외에는 없다. 다만 선교 방법에서 무례함을 버리고 모든 종교의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예’를 갖추자는 뜻이다.

한국교회의 사회적 역할도 마찬가지다. 불교든 유교든 다른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예’를 갖추어 대할 때 더불어 살 수 있을 것이다. 백인 기독교 국가들이 저질렀던 식민주의 침략시대의 흑백논리로 다른 종교와 문화를 대했던 버릇없는 짓을 말자는 것이다.


한기총을 비롯한 모든 기독교 연합체들이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예’부터 갖추자. 교황시대를 꿈꾸는 망상적인 연합체의 지도자가 되어서 버릇없는 행동을 통해 기독교내의 다양성과 융합을 해쳐서는 안 된다.


기독교의 장점은 선교적 다양성이다. 천주교와 달리 다양한 교회연합체가 감람나무의 가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분모로 해서 다양한 선교활동을 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을 거부하지 않는 한 모든 형태의 다양한 선교적 방법을 상호존중해주는 ‘예’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교회 밖에서도 다른 종교를 타도의 대상, 파멸시킬 사탄의 집단으로 몰아치는 무례를 범하지 말고 긍휼히 보고 불쌍히 여기며 그 다양한 종교적 가치에 대해 ‘예’로써 대할 때 지구촌 한 마을에서 더불어 사는 기독교시민이 될 것이다. 특히 해외선교사들은 미국식으로 돈 뿌리고 스스로 교만해서 버릇없이 행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쪼록 2009년도 기독교연합선교단체의 지도자들과 힘 있는 대형교회 목사님부터 지구촌 한 마을 시대의 평등한 다양성과 융합의 사회에서 ‘예’를 다해 섬기는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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