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성탄축하동화 - ‘꼬마천사의 성탄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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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성탄축하동화 - ‘꼬마천사의 성탄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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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2.2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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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잘가. 두 눈이 나으면 나를 꼭 찾아와야 돼”
 

“최씨, 이렇게 추운 날은 집에서 좀 쉬지 일 나왔어?”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닙네다. 제가 살던 목단강은 지금쯤 아마 영하 30도 정도는 될 겁네다.”

“아니, 영하 10도만 돼도 모든 게 다 얼어붙는데 30도라니, 그런데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요?”

“그래도 제가 태어나 자란 곳이라 그런지 추운 줄 모르고 자랐습네다. 모국이라고 찾아 온 이 곳이 저에게 훨씬 춥습네다.”

“오늘은 현장에 모닥불을 피워야 할꺼야. 내가 불을 피울테니 좀 기다려.”

서울 외각의 신흥개발지역 아파트 공사장에는 막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추위와는 아랑곳없이 이른 아침부터 손을 호호불며 작업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중국동포 최씨 아저씨

“최씨, 어제 보니까 벽돌운반은 서투른 것 같은데 오늘은 모래 운반조에서 일해요.”

“네, 반장님 고맙습네다.”

“고맙기는 뭘, 돈 좀 벌겠다고 멀리 중국 땅에서 이 곳까지 와 고생이 많수다.”

그렇습니다. 최씨는 중국동포입니다. 무남독녀 외동딸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작년 봄 중학교교사를 하던 최씨는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취업차 온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도착하여 산업체 회사에 근무해 보니 한 달 내내 힘껏 일해도 막상 손에 잡히는 돈의 액수는 한국에 오기 위해 중국에서 빌려 쓴 돈의 이자를 갚기에도 부족한 액수였습니다.

막노동으로 살아가는 중국동포 최씨

고민과 걱정을 하던 끝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위험부담과 힘은 더 들지만 아파트 건설 현장으로 나와 막노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최씨, 중국엔 언제 돌아갈 생각이오?”

“글쎄,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내일이라도 돌아가고 싶은데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합네다. 아마 내년 말 쯤에는 돌아갈 수 있갓지요.”

“같은 민족끼리 큰 도움을 주지 못해 늘 미안한 생각이오만 한국 사회가 그렇게 만만한게 아니요.”

“저도 그걸 많이 느꼈습네다.”

최씨가 중국에서 중학교 교사로 있을 때 받은 월급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8만원 정도 였는데 한국에 가서 일하면 160만원은 무슨 일을 해도 벌 수 있다는 말에 하나 밖에 없는 딸의 장래를 위해 교육비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한 후 덜컥 한국에 오게 된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는 거리

처음 근무했던 회사에서의 일은 대부분 자동화 시스템으로 육체적 노동 강도가 힘들지 않았지만 아파트 건설 현장의 일은 처음 해보는 일이라 최씨에게는 여간 힘들지 않았습니다.

일을 마치고 아무도 없는 세 평 안팎의 사글세 방으로 돌아오면 차디찬 냉기에 온 몸은 아프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쑤시고 힘들었지만 이를 악물로 버텨온 것입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12월에 접어들자 거리에는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트리와 캐럴송이 어느새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맨 먼저 백화점과 커다란 상점에서부터 크리스마스준비가 시작되는 것 같았습니다.

“최씨, 아무리 돈도 좋지만 건강을 유지해야 고향에도 돌아갈 수 있으니 너무 돈돈 하지 말고 먹을 것 제대로 먹고 그래야겠어.”

작업반장 심씨는 50대 초반의 나이지만 30여년을 건설현장에서 보낸 경험자로 모든 일에 척척박사였습니다.

사실 최씨는 전혀 익숙하지 않는 현장 일에 요즘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습니다.

겨우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하늘에서는 눈이 퐁퐁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러요

그런데 최씨가 집 앞 가까이 도착해 횡단보도를 급히 건너고 있을 때 과속으로 달려오던 빨간색 스포츠카 한대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다가 차가 한바퀴 돌면서 그만 최씨를 치고 말았습니다.

으악!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차에 친 최씨의 몸이 순식간에 공중으로 붕 떴다가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최씨는 정신을 잃었고 최씨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하얀 벽으로 둘러 쌓인 병원 응급실이었습니다.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병원에서 최씨의 귀에 들리는 소리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자기들끼리 나누는 이야기였습니다.

“이건 정말 기적이군요. 그런데 두 눈은 회복이 어렵겠어요.”

“가해차량의 주인은 다녀갔습니까?”

“돈 있는 졸부들의 자식들이라 피해자의 생명에 지장이 없냐고만 묻더니 보험회사에서 알아서 해 줄 것 이라고 한 후 코빼기도 안보입니다.”

최씨는 얼굴과 두 눈에 붕대를 칭칭 감고 숨을 쉴 수 있도록 콧 구멍만 남겨놓은 채 응급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습니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며 일반 병실로 옮기니 그 곳에는 다른 환자들이 서너 명 있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는 미이라 같애.”

“너는 누구니” 몇 살 먹었어?”

“나 말이야. 일곱 살인데 이름은 사라야. 그런데 아저씨는 왜 눈을 붕대로 칭칭 감았어? 본래 앞 못보는 장님이야?”

최씨는 다른 데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두 눈이 크게 다쳐 어쩌면 영영 보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의사들의 걱정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일곱살 난 선배 ‘사라’

그런데 일곱살 난 소녀가 자꾸 따라다니며 이것 저것 귀찮게 묻는 것조차 신경이 쓰여 싫었습니다.

“꼬마야, 제발 귀찮게 하지 말고 나 혼자 있게 해 줄 수 없갔니?”

“밖에는 지금 하얀나비가 춤을 추고 있잖아. 얼마나 예쁜데.”

“하얀 나비라니?”

“아저씨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몰라” 내가 손잡아 줄 테니 창가로 와서 한번 보라니까!”

“그래 고맙다. 그런데 넌 왜서 일곱 살 밖에 안 된 어린애가 어른에게 반말을 하는거니?”

“어휴. 이런 바보, 이방에서는 내가 제일 오래 있었잖아. 그러니까 선배지. 그리고 난 가까운 사람에게는 반말을 해. 우리 아빠, 엄마에게도 그래. 아저씨는 반말이 듣기 싫어?”

최씨는 순간 중국에 두고 온 딸 생각이 났습니다. 어렸을 적에 반말을 하며 응석을 부리던 모습이 머릿속에 떠 오른 것입니다.

“그런데 넌 어디가 아파서 오랫동안 이 병실에 있게 된거니?”

“글쎄, 잘 모르는데 엄마가 병이란 마음 먹기에 따라 이길 수 있다고 해서 나도 마음 편히 지내고 있어.”

최씨와 일곱 살 소녀 사라는 어느새 다정한 친구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저녁이 되기까지 사라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하루가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꼬마천사… 고마웠어”

그렇게 두 주간이 지났고 최씨는 일단 퇴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집에 가셔서 쉬고 계시면 안구기증자가 나오는 대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안구 이식 수술만 잘 되면 옛날처럼 다시 밝은 세상을 볼 수 있을테니 낙심 마시고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해마다 성탄절을 앞두고 이맘 때 쯤 이면 기증자들이 더 늘어납니다.”

최씨는 꼬마 친구 사라와 헤어지는 게 너무 서운했습니다.

“아저씨, 잘가. 그리고 두 눈이 나으면 꼭 나를 찾아와야 돼!”

“그래, 비록 너를 두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넌 꼬마천사가 틀림없어. 그 동안 너무 고마웠어.”

최씨는 사라의 손을 쥔 채 한참동안 망설이다가 겨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중국에서 달려온 아내의 부축을 받아 퇴원을 한 후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안구 기증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시 눈을 뜰 수 있다니…’

성탄절을 사흘 정도 앞둔 어느 날 아침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안구 기증자가 나타났으니 곧 바로 수술준비를 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말입니까? 너무 감사합네다.”

전화를 받은 최씨는 아내와 함께 곧 바로 병원으로 달려왔고 안구이식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최선생님, 모레 쯤이면 한번 붕대를 풀어봅시다. 수술이 잘 되었기 때문에 회복도 빠를 것입니다. 두 눈을 뜨시게 되면 맨 먼저 무엇을 보고 싶으십니까?”

“의사 선생님, 제가 다시 눈을 뜰 수 있다면 맨 먼저 저에게 안구를 기증해주신 분을 뵙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평안한 마음으로 잘 쉬십시오.”

최씨는 자기에게 안구를 기증해 준 분이 누구인지 궁금했습니다.

기다림 속에 수술한지 삼일이 지나 마침내 붕대를 풀게 되었습니다.

한 겹씩 붕대가 벗겨질 때마다 환자인 최씨도 의사들도 모두 긴장이 되어 숨을 죽였습니다.

마지막 붕대가 벗겨지고 최씨가 눈을 깜빡거리며 눈을 조심스럽게 떴습니다.

“뭐가 보입니까?”

“천천히 눈을 떠 보십시오.”

“보입니다. 의사선생님, 창문이 보이고, 의사선생님과 간호사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최씨는 눈을 뜨기가 바쁘게 자기에게 안구를 기증해주신 고마운 분을 맨 먼저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의사선생님은 곱게 접은 편지 한 통을 최씨의 손에 쥐어 줬습니다.

“아저씨, 메리크리스마스”

“이 편지를 직접 읽어보십시오. 최 선생께 두 눈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고 간 천사의 편지입니다.”

“천사의 선물이라구요?”

최씨가 편지를 펴 조심스럽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저씨, 저 사라에요. 아저씨가 퇴원하고 난 후 다음날 저도 더 이상 병실에 있을 수 없게 되었어요.

저는 불치의 암으로 그동안 치료를 받아왔는데 더 이상은 살 수 없다고 해서 제가 사랑하는 아저씨께 마지막으로 제 눈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드리기로 했어요.

아저씨, 어서 두 눈을 회복하셔서 중국으로 돌아가시면 아저씨의 딸과 행복하게 사세요. 저는 먼저 하늘나라에 가서 아저씨를 기다릴께요.

저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도 저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생명을 대신 주셨거든요. 그래서 저도 눈을 다쳐 갑갑해 하시는 아저씨께 제가 드릴 수 있는 선물을 드리는 것이니까 그렇게 아세요.  
아저씨 메리크리스마스!......    -사라 올림"

꼬마천사 사라의 편지를 읽던 최씨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감격의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려내렸고 어두워져 가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은 하늘에서 나비가 되어 춤추는 함박눈과 함께 깊어만 갔습니다.


◆작가소개-김 철 수(아동문학가)


아동문학가 김철수 장로는 월간기독교교육지와 월간문학 작품상 동화 당선을 통해 데뷔. 『꾸러기 장군』, 『두발자전거』 등 200여권의 창작저서를 출간한바 있으며 국제펜클럽한국본부이사를 역임. 현재 한국문인협회 감사, 한국아동문학회 부회장, 한국장로문인회 부회장, 국제아동문학작가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미국솔로몬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및 월간아동문학 발행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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