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영수증인가, 청구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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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영수증인가, 청구서인가?”
  • 이의용 교수
  • 승인 2023.07.19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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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용 교수의 감사행전 (49)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웃으면 복이 와요’란 코미디 프로가 있었다. 많은 시청자들이 주말마다 기다릴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가끔 이 프로그램 이름에 대해 생각을 해보곤 한다. 과연 웃으면 복이 오는 건가, 복이 와서 웃게 되는 것인가? 

김영란법이 처음 시행될 무렵, 신문과 방송에는 선물과 뇌물의 차이에 대해 재미있는 말들이 소개됐다. “선물은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거고, 뇌물은 남에게 감추고 싶은 거다”, “받고서 잠을 잘 자면 선물이고, 잠을 못 이루면 뇌물이다”, “그 자리(職)를 떠나도 받을 수 있는 건 선물이고, 그 자리를 떠나면 다시 받을 수 없는 건 뇌물이다”, “가슴에 감동을 주면 선물이고, 뇌에 자극을 주면 뇌물이다”, “서서 받는 건 선물이고, 앉아서 받는 건 뇌물이다”, “언론에 보도돼도 괜찮으면 선물이고, 보도돼서는 안 되는 건 뇌물이다” 참고로 김영란법은 식사비 3만원, 선물 5만원 그 미만은 선물로 보지만 그 이상은 뇌물로 본다. 뇌물은 ‘대가’를 전제로 하니 부담스러운 ‘거래’ 수단이다.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최근(2023. 6.) 발표한 ‘헌금과 신앙에 대한 인식 동의율’ 조사결과를 내놨다. “교회에 헌금을 하는 사람은 그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복은 받는다”에 동의하는 응답율은 51%, “수입에서 헌금을 얼마나 하는지는 그 사람의 신앙 척도를 나타낸다”는 32%, “기독교인이 부를 축적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 맞지 않는다”는 22%. 우리의 신앙에서 ‘헌금과 복’의 인과관계(因果關係)‘를 살짝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헌금을 많이 하면 복이 오는 건가, 복이 와서 헌금을 많이 하는 건가.

감사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나 행동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을 향한 수평적 감사에 비해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 감사를 더 많이 한다. 감사학교에서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 감사를 하나?” 다양한 대답들이 나온다.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받은 은혜에 대한 응답하려고”,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하기 위해서”,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행복한 삶을 위해서” 등. 가장 많이 나오는 답은 단연 “복을 받기 위해서”다. 감사를 하면 복을 받는 건지, 복을 받아서 감사를 하는 건지.

감사는 받은 은혜(복)가
고마워서 나타내는 ‘반응’

요즘엔 학교나 군대, 기업 같은 곳에서도 감사일기 쓰기 운동을 한다. 언뜻 교회에서보다 더 활발해 보인다. 한때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이 큰 영향력을 발휘한 적이 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는 게 핵심인데, 많은 교회들조차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교인들에게 가르쳤다. 나는 지금도 ‘긍정의 힘’의 논리가 과연 신학적으로 맞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요즘 학교나 군대, 기업의 감사운동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난다는 긍정 심리학에 기반하고 있다. 그래서 ‘감사하면 복을 받는다’, ‘감사는 감사를 부른다’고 강조를 한다. 이러한 운동은 주로 은혜를 베풀어준 다른 사람들에 대해 고마워 하도록 가르친다. 또는 자신이 믿는 절대자에 대해 막연한 고마움을 갖도록 가르친다.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살면 모든 일이 잘 된다며, 감사일기를 쓰라고 권유한다.

이러한 감사운동은 일견 교회에서 가르치는 감사와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게 있다. 성경이 가르치는 감사는 받은 은혜(복)가 고마워서 나타내는 ‘반응’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료로 주어지는 선물이다.(엡 1:8) 선물을 받기 위해 미리 대가를 제공하려 한다면 선물의 가치를 훼손하게 된다. 그럼에도 사이비 종교나 이단의 교주들은 예외 없이 선불(先拂)로 복을 판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에게 은혜를 한없이 베푼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다. 자식은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걸 잘 누리면 된다. 그런데 그 은혜를 더 받으려고 ‘꼼수’를 부리면 부모의 순수한 마음은 상처를 입게 된다. 감사조차도 그 어떤 대가를 기대하며 드리면 ‘뇌물’이 되고 ‘복채’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부모와 자식 사이가 ‘거래’ 관계가 되고 만다. 하나님과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꼬”(시 116:12) 바로 이런 마음으로 헌금도 하고, 기도도 하고, 봉사도 하고, 찬양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감사는 청구서가 아니라 영수증이다. 내게 주신 은혜를 먼저 ‘발견’해야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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