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문화’라는 이름의 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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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문화’라는 이름의 바벨탑
  • 정하라 기자
  • 승인 2021.12.06 2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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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독자로부터 편집국에 전화가 왔다. 내용인즉슨 넷플릭스에서 상영하는 ‘지옥’이 너무 비성경적이고 반기독교적이니 이에 대한 반론기사를 써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넷플릭스 ‘지옥’은 썸네일에서부터 자극적인 타이틀까지 왠지 보기가 꺼려지는 작품이었다.

다만 국내 제작드라마로 ‘오징어게임’에 이어 세계 넷플릭스 순위 1위에 올랐다는데 호기심을 자극하던 차에 독자의 성화까지 이어지자 ‘문화담당 기자’라는 사명감을 안고 총 6회에 이르는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확실히 흥행에 성공한 작품인 만큼 1회부터 6회까지 쉬지 않고 볼 수 있을 만큼 빠른 전개와 높은 몰입도를 자랑했다.

‘지옥’이라는 생소한 소재와 판타지적 요소, 죽음을 앞둔 인간의 극적인 긴장감에 대한 묘사 자체는 흥미로웠다. 하지만 폭력과 살인 사건에 대한 묘사는 끔찍하리만큼 잔혹했다. 극은 ‘천사’가 특정한 사람에게 지옥행을 ‘고지’하면, 정확히 예고된 시간에 사신이 등장해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고 지옥으로 데리고 간다(시연)’는 초자연적 현상을 그린다. 어떠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권선징악의 개념이 아니다.

그리고 신의 지옥행 선고에 특정한 ‘의도’가 있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바로 ‘새진리회’라는 신흥종교단체다. ‘지옥’은 그렇게 친절한 드라마는 아니다. 이번 시즌만 보면 왜 갑작스러운 신의 징벌이 시작됐는지, ‘고지’는 누가 받는 것인지에 대해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다.

‘지옥’이라는 이름처럼 그들에게 지옥은 있지만, 천국은 없다. 여기서 ‘지옥’은 성경이 말하는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갈 수 있는 천국과 그 믿음을 저버린 지옥의 의미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사실상 ‘지옥’이라는 이름만 차용했을 뿐 이를 기독교적으로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했던 것은 ‘지옥’을 보는 내내 신의 ‘시연’이 주는 공포보다 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것이었다.

지옥을 향한 사람들의 공포가 세상을 ‘정의롭게 할 것’이라는 새진리회의 기대가 틀렸다는 것은 ‘화살촉’이라는 광기 어린 집단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화살촉’은 새진리회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며 그를 거스르는 사람은 폭력을 행사하거나 산채로 태워죽이면서 “신의 권위에 응징한 대가”라는 주장을 펼친다.

많은 이들이 관람했다는 이유로 오늘날 문화계는 그것을 단순히 대중성과 작품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대중성은 작품성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대중은 갈수록 자극적인 콘텐츠를 쫓는다. 인간의 호기심과 흥분을 채우기 위해 건드려서는 안 될 신의 금기에 도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끝이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쌓았던 성경 속 ‘바벨탑’ 사건이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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