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 자활 직업 공동체 ‘함께걸음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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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 자활 직업 공동체 ‘함께걸음 농장’
  • 승인 2004.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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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없는 세상향해 날개짓 하는‘기러기가족’

충청남도 서산의 한 시골마을엔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어디하나 성한 곳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하지만 어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 ‘함께걸음 농장’의 소박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신체장애 2급부터 정신지체 1~2급의 장애우들이 모여 사는 함께걸음 농장에서는 “서툴지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뿜어져 나온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사장:김활용목사·사진 왼쪽 두번째)에서 장애우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또 다른 대안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함께걸음 농장’은 식용 기러기와 개를 사육하며 1차산업에 적응하는 장애우들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장맛비가 잠시 그친 어느 날, 농장의 식구들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있었다. 만 마리 가까이 되는 기러기의 끼니를 챙기고 부화장의 알을 골고루 뒤집어 놓고, 사육하는 개들의 사료를 주고 나면 어느덧 한 나절이 지난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이 스스로 식사까지 해결하는 사람들. 반복되는 일상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이 공동체 삶에 적응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매일 똑같은 일과를 반복적으로 가르쳐 주어야 하지만 어느덧 장애우들은 농장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즐겁게 먹고, 웃고, 나누는 가운데 가족을 떠나 처음으로 사회라는 것을 접하고 노동의 가치를 배우며 살아가게 된 것이다.

‘함께걸음 농장’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1년 7월. 가족의 동의를 얻어 취업에 나선 장애우 10여명이 모여들면서부터. 1년 가까이 직접 못질과 망치질을 하며 7개의 기러기 하우스와 개 사육장, 부화실 등을 꾸며 놓았다. 3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농장에는 8명의 장애우 가족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근처 한서대학교 주변 원룸에서 생활하던 식구들은 지난달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완공된 새 집에 입주했다.

공동체를 계획하고 식구들의 살림을 맡아왔던 김태웅팀장(신체장애 2급·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직업센터)은 장애인 자립의 꿈을 안고 고향인 서산으로 내려왔다. 아내와 자식들을 떼어 놓고 그가 선택한 또다른 가족은 그와 같은 모습의 장애우들이었다. 단지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조금 생각이 모자라고 행동이 늦다는 이유로 사회는 장애우들에게 냉담한 시선을 보낸다. ‘우리도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장애우들을 향한 고민은 1차 산업인 농업이 장애우들에게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중에서도 깨끗하고 몸에 좋은 식용 기러기를 택해 농장을 열었다.

“어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애써 키워놓은 기러기들이 태풍으로 죽어 폐사했고, 조류독감 파동으로 유통이 전면 중단되는 일도 있었어요. 기러기가 보양식으로 인기를 끌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유행도 지나 유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실 ‘함께걸음 농장’의 꿈은 단지 10명의 장애우들만 보살피기 위함이 아니었다. 서산 농장에서 사육한 기러기를 자본으로 다른 장애우들에게 소규모 농장을 분양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3년이 되도록 별다른 수익이 없어 농장 식구들은 그저 정부기관에서 지급하는 급여 60만원만 받을 뿐이다. 그래도 장애우 가족들은 작은 돈이나마 직접 벌어 생활하는 일이 신기하기만 하다.

‘함께걸음 농장’ 가족의 막내 성태씨(23세·사진 왼쪽끝)는 가족에게 버림받은 고아였다. 잘생긴 얼굴에는 시종 웃음이 맴돌았다. “재미있어요?” 기자의 질문에 “네” 하고 짧게 대답을 건넨다. 기러기 사료를 주고 돌아와 다른 형들과 함께 부화장의 알을 뒤집는다. 맏형격인 기대씨(56)도 군말없이 부화장으로 들어간다. 고아원에서 생활하는 동안 많은 서러움을 당했던 성태씨는 이곳 함께걸음 농장을 좋아한다. 아껴주는 형들이 있고 해야할 일이 있으니 좋을 수밖에 없다. 18세가 되면 시설을 나와야 했던 그로써는 이렇게라도 몸을 둘 곳이 있어 행복하다. 성태씨를 제외한 나머지 정신지체 장애우들은 모두 가족이 있다. 그러나 가족조차 함께 하길 힘겨워 하는 소외된 구성원이었다. 그나마 끈끈하게 정을 붙이고 사는 가족들만 두어달에 한번씩 면회를 오곤한다.

TV에 나온 농장의 모습을 보고 자발적으로 찾아온 서영철씨(사진 중앙)는 이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몇해전 50대초반의 젊은 나이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왼쪽신경이 마비가 돼 지체장애 판정을 받았다. 영철씨는 TV에 비친 농장 식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막연히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가족의 반대를 뿌리치고 서산으로 들어와 공동체 생활에 합류한 그는 트럭을 몰고 함께 일을 하며 저녁시간을 쪼개 장애우들에게 한글과 숫자를 가르치고 있다. 젊은 시절 거창에서 교사로 재직했던 경험을 장애우들에게 쏟고 있는 것이다.

“참 순수한 사람들이죠. 얼굴 표정부터 너무나 순수합니다. 이름 석자를 가르치는 일도 보람이 있고요, 돈을 사용하는 법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꼭 5~6살 어린아이들 같지요. 그런데 노동력은 보통사람들과 똑같아요. 매일 매일 새롭게 가르쳐야 하는 것만 빼면 정신장애우라고 일반인과 차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동안 정신없이 살아왔습니다. 돈도 많이 벌어보았고…. 그런데 지금 몸도 불편하고 가족과 떨어져 있지만 마음이 참 행복합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몸이 아프고 나서 뒤늦게 하나님을 찾은 영철씨는 농장장의 역할을 맡아하며 농장 식구들은 하나님께로 인도하고픈 소망이 있다. 지난 주일에는 처음으로 근처 교회에 데리고 나갔다. 찬양도 모르고 성경도 읽을 수 없는 장애우들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고 싶었다. “농장생활이 단순히 노동을 하는데 그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수익이 나는 품종을 개발하고 그 수익을 장애우들에게 더 크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들의 영혼을 채울 수 있는 말씀을 심어주면 공동체는 더 화목해지지 않을까요.”

때묻지 않은 사람들. 가끔은 토라지고 화를 내 난처하게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태초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 단지 사회의 시선이 그들을 왜곡시킬 뿐, 살아가는데 있어 불편할 것은 없다. 외로운 사람끼리 모여사는 기러기 농장엔 행복을 낳는 ‘기러기 가족’이 차별없는 미래를 향해 소중한 꿈을 한땀 한땀 수놓아 가고 있었다.

서산=이현주기자

고단백 ‘식용 기러기’식당차려 직접 유통나서

‘함께걸음 농장’ 김태웅팀장은 요즈음 식당오픈 준비로 분주하다. 사람들이 ‘기러기 고기’의 맛을 잘 알지 못하는 까닭에 아예 식당을 차리고 나섰다. 딱히 유통처를 찾지 못해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농장을 위해 직접 판매에 나선 것이다. 이 일 역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돕고 있다. 그만큼 기러기 농사의 성공여부는 중요하다. 장애우들의 직업터전을 마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활용이사장은 “장애우나 비장애우나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소중한 피조물”이라며 “이들이 사회에 적응하고 하나의 구성원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을 때까지 다양한 시도를 계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함께걸음 농장’에서 키우고 있는 기러기는 우리가 바다에서 흔히 보는 기러기와는 종류가 다르다.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보는 ‘기러기’라고 생각해 먹기를 꺼린다. 농장에서 사육하는 기러기는 유럽 등에 식용으로 널리 보급된 ‘머스크비’라는 종류로 시베리아 오리의 일종이다.

기러기는 한방에서는 양기가 좋다는 뜻에서 ‘양조’ 또는 보양의 ‘왕조’라고 불린다. 단백질과 인, 칼슘이 일반 고기류에 비해 최소 8배에서 최고 55배까지 높아 노약자나 환자의 회복식, 수험생의 건강식으로 효능을 인정받고 있다.

농장의 기러기는 한방탕, 샤브샤브, 불고기, 백숙, 로스구이, 칼국수 등의 재료로 쓰인다. ‘함께걸음 농장’은 이달 말 식당을 오픈하면서 기러기요리를 보급할 예정이다. 농장식구들에게 보다 많은 수익을 나눠주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전초전이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함께 뜻을 나누는 이웃들이 늘어난다면 몸이 조금은 불편한 장애우들도 세상에 자신있게 발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함께걸음 농장’은 지금 그 첫 걸음을 조심스레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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