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相生)과 상쟁(相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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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相生)과 상쟁(相爭)
  • 승인 2004.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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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총선의 결과는 ‘상생’(相生) 국회가 된다고 했고, 모든 국민들이 그렇게 주문했다. 그런데 상생은 고사하고 순 싸움쟁이들이다. 국회는 지금까지 정상 가동도 못하고 있다. 원(院) 구성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결연한 흑백이다. 이념분쟁이다. 사색당쟁(四色黨爭)은 이조를 부패케 했다. 오늘의 국정 현실이 그때와 무엇이 다른가.

‘상생’(相生)이란 ‘서로 산다’는 뜻이요 ‘상쟁’(相爭)이란 ‘서로 다툰다’는 뜻이다. 54년 전의 동족상쟁(同族相爭)의 비참한 역사의 되풀이를 지금도 하고 있다. 참 낯뜨거운 일이다. 민생문제는 피부에 느끼는 고통을 말하는데 심각한 이념대립과 상호이해관계로 무엇 하나 뚜렷하고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이 없다.

나라가 어려울 때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끝까지 파헤쳐 자기편이 승리하는 KO승의 쾌감을 얻으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국회 공전, 이라크 파병, 수도권 이전, 노사의 갈등, 북핵 문제 등 너무나 긴박한 사건들이 줄줄이 있건만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지금은 남북 갈등보다 남남 갈등이 더 문제다. 거기에다 잘못된 정신문화로 인한 현실 만족 추구의 병패는 우리의 개념이나 섬김의 바른 사고는 고사하고, 남의 생각이나 주장은 아예 힘으로 몰아부쳐 인정하지 않으려는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하다.

‘법’(法)이라는 글자는 물 변이며, 去는 갈 거니 결국 법이란 물이 흘러가는대로 순리에 맞아야 한다. 산허리를 깎아 골프장을 만들고 여기저기 굴을 파 고속도로를 만들고, 바다를 메꿔 농토를 만들고 도시를 만드는 것을 인간들은 현대문명의 발전이라고 자랑할지 모르나 조물주의 심정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자연도 하나님의 창조요, 자연 속에서 생을 누리는 동·식물 모두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이제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상생할 수 없을까? 대통령의 말처럼 해먹기 힘든 때이다. 이라크에서 희생된 고 김선일씨 문제도 좀 더 조용하게 마무리되길 바란다. 위대한 선교사의 순교다. 그의 죽음이 정치적 이용물이 아닌, 나라를 사랑하고 아랍권을 사랑한 한 선교사의 고귀한 죽음으로 기억되고 존중된다면 고인의 명예나 가족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오늘 우리나라의 상생의 문화는 대통령도 국회도 어떤 정치가나 시민연대의 힘으로도 할 수 없다. 복음으로만 할 수 있다.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낮은 데로 찾아오신 것이다. 끝없는 자기 포기요 겸손한 사역이셨다. 온유와 겸손으로 섬기는 상생의 문화는 한국교회가 앞장서 실현할 때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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