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희생양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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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희생양 찾기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0.10.23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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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안의 작은 만화 웹툰은 기자의 출근길 메이트다. 약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출근길도 스크롤을 몇 번 내리다 보면 뚝딱 지나간다.

여러 웹툰을 보다보면 꼭 한 번씩 ‘고구마’ 캐릭터가 등장한다. 물 없이 삶은 고구마를 먹는 것처럼 속을 답답하게 하는 사람이 나온다는 뜻이다. 그런가하면 온갖 민폐와 악행은 가리지 않고 일삼는 완벽한 ‘빌런’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웹툰은 ‘고구마’와 ‘빌런’에서 끝나지 않는다. 주인공이 빌런 캐릭터를 시원하게 처리하며 독자들에게 통쾌한 ‘사이다’와 함께 카타르시스를 안겨 준다.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꽉 막힌 고구마 전개가 계속될 때면 독자들은 어서 사이다를 내놓으라며 작가를 닦달하기도 한다.

기자 역시 이런 사이다 전개에 갈증을 해소하던 독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고구마-사이다식 전개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대중들이 끝없이 분노를 토해낼 ‘욕받이’ 희생양을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작품 속 고구마 캐릭터는 현실에선 한 번만 해도 욕먹을 비상식적인 행동들을 혼자서 모두 해낸다. 일단 낙인이 찍히면 다양한 사연과 이유, 또 다른 내면을 가진 복합적 캐릭터로 그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모습에 대중들은 거리낌 없이 비난을 쏟아내고 캐릭터가 처절히 몰락하는 모습에서 희열을 느낀다. 대중들의 분노를 토해내기 위해 철저히 기획된 희생양이다.

이제 우울함에 빠졌던 코로나 블루를 넘어 분노로 가득 찬 코로나 레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작품 속 고구마 캐릭터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은 현실에도 고스란히 옮겨지고 있는 듯하다. 분노의 시대, 그리스인들만이라도 정죄와 비난보다 용서와 관용의 본이 될 수는 없을까. 너희 중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치라던 예수님의 말씀이 머리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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