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목사의 희망목회45년 - 가정 안에 있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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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목사의 희망목회45년 - 가정 안에 있는 교회
  • 승인 2004.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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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2사도들이 10만 성도를 양육

나는 침대에 누워 어떻게 하면 다시 우리 교회 성도들을 성숙하게 치리해나가야 할지를 알고 싶었다. 교회가 지금보다 더 커진다면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성령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질문했다.

ꡒ주님,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요?ꡓ

ꡒ나의 백성이 떠나가서 성장하게 하라.ꡓ

나는 주님의 음성에 깜짝 놀랐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그분이 또 친밀하게 말씀하셨다.

ꡒ내 백성들을 조용기의 왕궁에서 떠나가게 하라. 그러나 그들을 성장하게 하라.ꡓ

ꡒ네 알겠습니다. 그들을 성장시키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ꡓ

ꡒ그들이 자신의 다리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어라. 그들이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도와라.ꡓ

그 음성은 나로 하여금 성경을 찾게 했다. 에베소 교회에게 쓴 바울의 서신서를 찾았다. 그 말씀은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에베소서 4장 11절은 ꡒ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ꡓ라고 말씀하고 있었다. 그 다음 12절은 하나님의 종들(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이 있는 것은 성도(평신도)들을 온전하게 구비시키고 봉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평신도들은 교회의 안과 밖에서 사역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또, 사도행전 2장 46절부터 47절을 읽었다. 초대교회에서는 두 가지 형태의 모임이 있었다. 제자들은 성전에 정기적으로 모이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떡을 떼고 친교를 가지기 위해서 그들의 집에서 날마다 모였다.

초대교회 시대에 예루살렘에는 20만의 인구 중에 10만 명의 교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에 단지 12명의 사도들만이 있었을 뿐인데 누가 그들 모두를 돌볼 수 있었단 말인가? 그들은 어떻게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모임을 갖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거기에는 가정의 친교를 위해 보다 작은 그룹이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사도행전 6장에 나오는 일곱 집사와 함께 하며 평신도 지도자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모임을 갖는 사역의 일을 분담해야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구역모임인 것이다.

그때까지 내가 교회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은 항상 예배당이었다. 나는 가정집을 교회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고 명확하게 가정집 안에서 모임을 갖는 교회를 언급했다.

나는 우리 교회와 나의 사역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모임을 갖는 사역을 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우리 교인들에게 주일과 수요일에 교회로 오라고 말을 해왔을 뿐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령님은 사도행전 6장으로 나를 이끌었다. 거기서 사도들은 늘어나는 교인들의 물질적 필요에 대해 사역하기 위해 스데반을 비롯한 성령이 충만한 일곱 집사들을 선택했고, 반면에 사도들은 자신들의 사역을 기도하고 말씀을 전파하는 일로 한정지었다. 그러나 일곱 집사 중의 하나인 스데반이 돌을 맞아 순교한 후, 교회는 흩어졌다. 그 다음 사도행전 8장에서 빌립의 사마리아 복음 전도운동에서 증명되듯이 집사들까지 설교자들이 되었다. 사도들은 물질적인 필요에 대해 사역할 권위뿐만 아니라, 설교할 권위까지 위임했다.

내가 사도행전을 살펴보았을 때, 오순절에 교회에 입교하는 자가 3천명이 되었고, 그 다음날에 5천명 이상이 입교하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12명의 사도들과 7명의 집사들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가정모임에서 성도들이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러한 모든 각 친교의 모임을 위해 또는 모든 구역을 위해 지도자들을 세우는 것이었다. 교회는 그 다음, 성장하는 성도들의 필요들을 돌보기 위해 잘 조직되었다.

ꡒ바로 그거야!ꡓ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다. 그것은 분별력을 가져다 주었다. 초대교회는 성령님께서 오순절 날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에게 강림하셨을 때, 어떻게 첫 날에 3천명의 개종자들을 흡수할 수 있었는가? 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은 성전이 아니라, 가정에서 충족 받았다. 내가 계속 성경을 읽었을 때, 가정집 안에서 모임을 갖는 것으로 언급된 다른 교회들, 그러니까 구역을 발견했다. 루디아의 집 안에서의 구역교회(행 16:40),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서의 구역교회(롬 16:3-5), 그리고 빌레몬 집에서의 구역교회(몬 1:2)를 보았다. 의심할 여지없이 가정모임에 대해서는 많은 성경적 뒷받침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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