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목사의 ‘희망목회 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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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목사의 ‘희망목회 45년’
  • 승인 2004.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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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혹사시키다

3백명 침례 거행중 정신 혼미 ‘기절’

해가 바뀌었어도 나는 변함없이 달리고 있었다. 1964년, 그해는 교회에 매우 중대한 시기였다. 누룩 같이 늘어나는 성도로 인해 네 번으로 나누어 예배를 드려야 했으며 매주 평균 15명 이상의 교인이 늘어났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1965년에는 약 7천5백명의 성도가 된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우리 교회 현실은 내가 하나님께 3천명의 교인을 달라고 요청한 것을 비교할 때, 계획에 뒤쳐져 있었다. 성도 2천4백명의 교회로 성장해 있었지만 목표 미달이라는 수치에 마음이 편치 못했다.

나는 이미 큰 고난 가운데 있었다. 여전히 내가 열심히 뛰고 있기 때문에 정말로 주님을 위해 큰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계속 달렸다. 나의 기력은 약해져갔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피로로 고통 받았으나, 교회가 제대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내 자신을 계속 혹사시켰다. 나는 설교하고 상담했으며, 병든 자를 방문했고 문을 두드렸다. 나는 항상 쉼 없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고 움직여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주일, 나에게 위기가 다가왔다. 3백명에게 침례식을 행하도록 계획이 잡혀 있었다. 내가 목회하는 것을 도와주던 미국 선교사 존 허스톤 선교사가 나를 돕기 위해 서 있었다. 그러나 내가 교회성장의 핵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 자신이 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허스톤 선교사는 나의 지친 모습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존에게 내가 모든 교인에게 직접 침례를 베풀겠다고 말했다.

내 자신을 ‘특별히 선택된 하나님의 그릇’으로 생각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만 이 성도들에게 축복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존은 내가 첫 번째 사람을 맞이하려고 물 속으로 들어갔을 때, 내가 이미 지쳐있는 것을 보았다.

“조 목사, 내가 당신 대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요.”

“아니 됐습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례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많은 성도들을 감당할 체력이 없었다. 나는 그들을 물속으로 눕히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세례를 주노라.”라고 외쳤다. 그런 다음, 물론 나는 그들을 다시 물 밖으로 일으켜내야만 했다. 처음 몇 명은 비교적 잘 해내었는데 그 다음 뚱뚱한 여인들이 왔는데 그들을 붙잡고 물 밖으로 들어올리는 데 굉장히 많은 힘이 소진되었다. 팔의 근육이 떨리기 시작했다. 존은 안색이 창백해 보인다며 걱정했다. 그러나 나의 결심을 강조하기 위해 머리를 힘 있게 끄덕이며, “난 괜찮아요.”라고 했다.

마음속으로 힘을 주시라고 기도했다. 나는 3백명 모두에게 침례를 베풀었고 마지막 성도가 물 밖으로 나갈 때, 갑자기 현기증이 나고 거의 정신착란에 빠지게 되었다. 맥 빠진 파김치가 돼있었다. 그러나 나의 일은 다 끝나지 않았다. 그날 오후에 미국에서 초청받고 온 복음전도자와 만나기로 일정이 잡혀있었고, 저녁에 그의 통역을 맡기로 되어있었다. 존은 마음이 착하고 온유했으며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다시 내 건강을 염려했다.

“조 목사. 오후에는 휴식을 하세요. 내가 강사를 맞으러 가지요.”

“그는 나와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어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목사로서 내가 맡아서 해야 할 일들 중에 단 하나라도 멈추기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점심 식사하는 것조차 거르고, 나는 공항으로 달려가서 그 복음전도자와 인사하고 그를 호텔로 인도했다. 서 있을 때마다 내 다리는 후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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