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게 잊었던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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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맣게 잊었던 그리움
  • 정성학 목사
  • 승인 2016.11.1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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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학 목사의 섬 목회 이야기(17)

“주일 밤에 훌쩍 날아와서 회 한 접시 먹고, 주무시고 월요일에 올라가시면 되지요.” 제가 육지에 계신 목사님들께 늘 쉽게 제주행을 권하는 말입니다. 비행기 요금이 싸진 탓도 있고, 목사님들이 한 주간 이리저리 부대끼며 눌려 살다가, 주일 예배를 모두 마치면 긴장감은 사라지고 공허함이 몰려오는데, 어디 가서 차 한 잔 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이런 때 저가 항공기가 제주에 운행하니 웬만하면 비행기 타고 오실 수 있어서, 차라리 이국적인 제주에 잠깐 날아와서 머리를 식힐 수 있기에, 이런 낭만적 인사가 힘을 얻습니다.

두어 주간 전(10월 23일) 주일 밤 9시에 어느 목사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아차, 오늘이 영원한 우정 이서탁(이양로, 서동관, 탁석남) 목사님이 제주도에 오시는 날이구나!’ 그 날 우리는 제주지방 찬양 축제를 하고 어르신들을 모시고 칼국수로 저녁을 먹고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공항에 도착하셨다는 것입니다. 공항에 나갔어야 하는데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우리 교회로 오시라고 하고는 그 사이 사방 횟집에 전화를 하니, 모두 문을 닫고 토속 음식점도 다 문을 닫았습니다. 삼성혈 해물탕 집에 전화를 하니 거기도 닫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도두점은 안 닫았을지 모른다며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도두에 전화를 하니 20분 안에 오면 드실 수 있다고 해서 부지런히 가기로 했습니다.

예배당 앞에서 기다리는데 한참을 지나도 오지 않아 이상한 느낌에 전화를 하니, 아니나 다를까 옛날 주소로 가고 있었습니다. 얼른 도두동으로 직접 오시라고 하고 가서 해물탕을 시켰습니다. 그야말로 커다란 가리비 조개와 전복들 사이로 문어 한 마리가 꿈틀대며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불을 켜고 끓여 맛있게 먹으며, 제주의 가을 밤을 보냈습니다.

참 좋은 분들을 만나 이렇게 밥 한 그릇 먹는 게 이리도 즐거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 분들은 그저 보고만 있어도 좋고, 같이 차 한 잔을 마셔도 좋은 분들입니다. 이 목사님이 동두천지방 감리사로, 서 목사님이 양주지방 감리사로 계실 때는 두 분이 제가 포천지방 부흥회 인도하는 곳으로 선물을 사가지고 오셨었고, 한 번은 동두천 찻집에서 탁 목사님과 우리 넷이서 차를 마시며 행복해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만나 저녁을 먹고, 커피는 돈이 아까워 편의점에서 1,500원 짜리 붕어싸만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려 드렸습니다.

그렇게 넷이 아이스크림 먹고, 저는 콘 몇 개를 더 사 들고 나와도 커피 한 잔 값인 11,900원이었습니다. 돌아와 생각해도 이런 분들이 주변에 계시다는 것이 여간 고맙지 않습니다. 이튿날은 또 천안, 분당, 서울로 가서 점심 대접하는 일과 출판일을 의논하는 일정이라 아침 8시 30분 비행기로 제주를 나와야 합니다. 그래도 제주에 있는 시간에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해물탕 한 그릇에 라면 사리로 배를 채우고 나설 때의 행복감은 목회 여정의 지친 심신을 풀기에 충분했습니다. 앞에 먼저 떠나는 차를 보내면서 고마운 마음을 보냅니다.

                                           정성학 목사 / 제주 기적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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