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감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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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감귤 이야기
  • 정성학 목사
  • 승인 2016.11.0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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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학 목사의 섬 목회 이야기(19)

제주도에 사는 지가 25년이 넘었습니다. 그간 애환도 있고, 숱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참 답답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한 것이 ‘제주도에서는 어떨 것’이라며 지레 짐작하는 생각들입니다. 제가 처음 제주에 왔을 때 어떤 분이 저에게 아주 진지하게 물어본 것 중 하나가 “제주도에도 축구 할 수 있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 생각에는 조그만 섬에 공항 빼고 나면 축구장 만들 곳이나 어디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워낙 순진하게 진심으로 물어온 터라 어쩌지 못한 채 그냥 웃고 넘겼습니다. 여기가 그렇게 작은 섬은 아니랍니다.

전에 김영삼님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 섬에 사는 분이 “이제는 거제도를 왕도(王島)라 부릅니다”라고 하길래, 제가 “제주도는 황제도에요. 거기는 거제에 비하면 훨씬 크기 때문이지요”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곳에 계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리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 살면서 귀한 분들에게 더러 한라봉을 사 드릴 때가 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이 “제주도 살면 참 좋을 거야. 날마다 이런 거 먹고!”라고 하십니다. 사실은 저도 아직 못 사먹어 본 것이었습니다. 저 뿐 아니라 여기 사는 분들이 마음 놓고 한라봉을 사 먹을 수 있는 분이 얼마나 계실지요?

여기 살면 매일 옥돔만 먹고, 제주 은갈치만 먹고 사는 줄 생각하지만, 아직 저도 은갈치를 우리가 먹기 위해 사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아마 믿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집사님이 가끔 한 마리씩 주어서 먹지만, 하기는 제가 갈치를 못 먹는 것도 한 이유였을 것입니다. 이제 얼마 전에 겨우 갈치를 배우긴 했지만 아직도 즐겨 먹는 편은 아니고, 그저 토하지 않고 먹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제주에 사는 재미가 있겠습니까? 제주에 살면서도 10년 넘도록 해산물을 먹을 줄 모르고 손님 때문에 횟집에 가서도 짬뽕을 시켜 먹었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제주도 사는 재미를 알게 해 준 일이 있었습니다. 3일 전쯤에 교회 집사님 한 분이 “목사님! 댁에 계세요?” 그래서 “네, 지금 5층 서재에 있는데요, 왜 그러세요?” 했더니 “잠깐 올라가겠습니다. 귤 좀 가지고 왔어요.” 그래서 나가 보니 막 딴 조생 감귤을 한 컨테이너(여기서 컨테이너란 외국에 수출품 싣고 가는 철제 화물 컨테이너가 아니고, 과수원에 주로 쓰는 노란색 플라스틱 상자를 말합니다. 약 30kg 정도의 귤이 들어갑니다.)를 들고 왔습니다. “어이쿠! 웬 귤을 이렇게 많이?” “집에서 이제 막 딴 거에요. 잡수어 보시라구요.”

“고맙습니다”며 인사를 하고 들어왔습니다. 육지에서는 힘든 광경입니다. 설령 시장에서 사 먹는다 해도 기껏 해야 1kg이나 3kg, 아니면 5kg짜리 하나 사다 먹겠지요. 큰 맘 먹고 사야 10kg을 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30kg짜리 컨테이너는 제주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농사한 것을 수확해서 막 가지고 온 싱싱한 것을 이렇게 넉넉하게 먹을 수 있겠습니까? 이게 제주도 사는 맛입니다. 물론 아들이 내려왔다가 몽땅 담아가지고 가는 바람에 몇 개 못 먹었습니다만, 그래도 어차피 가족들이 먹은 것이니 고마울 뿐입니다.

                                            정성학 목사 / 제주 기적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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