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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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 정성학 목사
  • 승인 2016.11.3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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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학 목사의 섬 목회 이야기(18)

이틀 전쯤 휴대 전화에 많이 깔려 있는 어플들이 기기의 속도를 느리게 한다는 말을 들어서 그동안 필요에 의해 깔아 두었던 어플들을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제주에 살다 보니 꼭 필요한 항공사 어플들이 여러 개 있었고, 필요한 때마다 각 지역에 다니며 저렴한 숙박업소를 볼 수 있는 어플도 여러 개 있었습니다. 사실 하나만 있어도 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러 개를 깔았습니다. 그런데 제주를 제외하고는 가격만 보고 갈 수 없는 것이, 지리도 익숙하지 않고 호텔의 시설도 사진으로만 검증이 안 되기 때문에 잘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그 외에 이런 저런 어플들을 모두 지우고 나니 화면 여섯 개에 빼곡하던 어플들이 새 개의 화면으로도 충분합니다.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고 기분도 좋아졌습니다. 내친 김에 몇 개 더 지우기로 했습니다. 한참 지웠습니다. 그러다가 ‘내 파일’에 왔습니다. 거기 보니 내 문서, 동영상, 사진 등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씩 지웠습니다.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진’이 있는데 약 15,000개나 되었습니다. 이 사진은 뭘까? 제 갤러리에 들어 있는 사진들이었습니다. 비교적 정리를 잘하는 성격상 제가 그동안 저장해 두었던 사진들입니다.

거기는 제 목회하는 내내 아주 오래된 사진부터 엊그제 막 찍은 사진까지 100개도 넘는 폴더에 일목요연하게 저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지우면 다 지워지는지 몰라서 두어 개쯤 지워 보았습니다. 그리고 갤러리를 보니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 이건 지워도 갤러리에 있는 사진은 안 지워지나 보다’ 하고 지우기를 눌렀습니다. 1,000개, 2000개, 3000개 15,000개가 모두 지워지면서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 지우고 난 뒤에 혹시나 하고 갤러리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머리 속에 다 빈 느낌이었습니다.

거기에는 한 장의 사진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정리하면서 제 사역, 아니 생애의 발자취를 돌아보던 지난 추억들이 고스란히 날아갔습니다. 기분이 이상합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의 모든 절기마다 찍었던 사진들, 각종 행사 기념 사진들, 그리고 성경연구원이나 우리 교회를 방문했던 이들과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담아 놓았던 사진들을 ‘지우기’ 키 하나로 모두 날려 보낸 것입니다. 특히 거기에는 새로 나온 교우들과 함께 첫 날 찍은 사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자료들을 모아 기록으로 남겨 놓으려던 생각은 이제 물 건너 갔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 있는 것일까? 놀라서 통신사에 물어보았습니다. 지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이버 클라우드, 유플러스 등 몇 개의 사진 저장소에 가보았습니다. 구글 ‘포토’에도 가 보았습니다. 몇 장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허망한 결과만 보여줍니다. 특히 제주에 사는 지난 25년 동안 전화기를 바꿀 때마다 사진부터 옮겨 두었던 추억들은 아주 먼 곳으로 가 버렸습니다. 아, 이제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사진이란 본디 지난 모습인데,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잊어 버리고 앞으로 열심히 살라는 건지 지금 깊이 생각 중입니다.

                                           정성학 목사 / 제주 기적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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