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복 교수의 설교학교 2] 우리의 설교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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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복 교수의 설교학교 2] 우리의 설교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가?
  • 정장복 교수
  • 승인 2016.03.1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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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입은 하나님의 도구...땀과 눈물로 말씀을 담아야

세계교회의 모든 교단마다 그들이 지켜야 할 신조들을 가지고 있다. 교단의 특성에 따라 그 내용은 다양하다. 그러나 교회의 정의는 모든 교회가 거의 일치하고 있다. 그것은 ‘교회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Worshiping community)’라는 항목이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우리의 그리스도교 예배는 타종교와는 전혀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타종교는 예배자들이 대상을 향하여 드리는 행위가 전부이다. 그러나 우리의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삼위 일체되신 하나님께 경배. 찬양. 감사. 참회. 봉헌. 간구를 드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말씀을 경청하여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정교회나 로마가톨릭은 이 말씀을 성찬성례전(미사)으로 이어가지만 우리의 개신교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설교’를 최우선으로 한다.

예배하는 시간에 설교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은 그 공동체가 지탱해야 할 생명의 만나이다. 그러한 까닭에 생명을 좌우하는 이 만나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어떤 첨가물이나 잡다한 불순물이 섞이지 아니하고 순수해야한다. 오염되거나 이물질이 끼어 있을 때 생명의 만나는 제 기능을 발하지 못한다. 회중들이 순수하지 못한 만나를 받아먹게 되면 그 결과는 자명하다. 순수한 만나가 아닌 혼탁한 만나를 먹은 백성들은 온전한 지․정․ 의를 갖출 수 없고 그 삶의 장은 기형적인 현상을 가져온다.

여기에 우리 한국교회는 유난히 고민이 있다. 어느 나라의 교회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우리의 한국교회는 설교가 많다. 매일의 새벽을 비롯하여 수요기도회 금요철야 주일 낮밤의 설교를 들어야 한다. 들을 때 마다 자신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면 “아멘 하시오“하는 강요를 쉬지를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분위기를 따라 ‘아멘’의 함성을 따라하지만 생각이 있는 회중들은 석연치 아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문제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을 들려주시지 않고 66권의 성경을 설교자들에게 주시면서 그 말씀을 선포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도록 하시는 데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설교자들이 하나님 말씀의 종으로서 그 본분을 다하기 위하여 최선을 기울여 오늘의 교회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시대의 풍조에 따라 지금은 설교자의 사고와 삶의 양태가 바뀌고 있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우선적으로 찾고 있는 속세의 한복판에서 가족을 거느리고 살아야 하는 현대의 설교자들은 어느 때보다 갈등을 거듭한다.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운반해야 할 성직자로서 고고한 영성생활과 경건의 실천이 매우 어려워진다. 설교단에 선 설교자를 유심히 보노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는 몸부림보다는 설교자의 생각과 경험과 지식과 분석으로 가득함을 본다.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회중들은 저마다 한마디씩을 한다. “‘오늘 목사님의 설교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가?’

개혁신학을 정립한 칼빈은 오늘의 설교자들이 수용하기 힘든 참으로 어려운 말을 다음과 같이 남기고 있다. “인간(설교자)의 입으로 나온 말은 하나님의 입을 통하여 나온 말씀과 동일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직접 말씀을 선포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설교자)을 그 도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충격적인 말이다. 이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설교자들은 설교를 이어갈 용기를 상실하게 된다. 죄인의 입에서 지금까지 이어진 설교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과 동일하다고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돌이켜보면 무섭고 떨리고 송구하고 위험한 자신의 설교 사역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음미해보아도 감당할 수 없는 말이다. 과연 인간의 입으로 나온 설교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과 동일한가?

그러나 칼빈의 말은 맞는 말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말씀의 종으로 세우시고 그 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르게 살기위한 율법을 주시었다. 그리고 그 율법의 틀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속하시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참된 종들은 주신 말씀을 일점일획이라도 틀리지 않게 운반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 기울였다. 그 말씀의 사역은 오늘의 설교자들에 의하여 계승되고 있다. 설교사역자는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에 의하여 세워진 종으로서 비록 결핍된 사연이 많을 지라도 그 신분은 분명히 말씀의 종이다. 그가 말씀의 단에 섰을 때는 성령님의 손에 붙잡힌 하나의 도구이다. 이러한 입장을 고수하면서 레스리 티자드는 “강단에서 외치는 설교의 순간은 한 인간의 활동이나 언어의 구사가 아니며 하나님이 인간을 통하여 말씀하신 시간이다.”는 매우 의미 깊은 말을 남기고 있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신실한 말씀의 종들은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자신이 섬기는 회중들을 위한 메시지를 받기 위하여 최선을 기울인다.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과 동일하게 하려는 땀과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적지 않은 현대의 설교자들은 전혀 이러한 의식을 갖지 아니한다. 그 때마다 하나님이 주신 다음의 준엄한 경고의 말씀이 떠오른다.

“너희가 두어 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에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내어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 도다.(겔 13:19)

정장복 교수 / 한일장신대 명예총장, 장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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