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권의 문화칼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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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의 문화칼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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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3.0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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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의 기독교미술 간파하기 (40)
▲ ⓒ허진권, ‘peace’ 73 x  50 cm, mixed media, 2016

부모가 자식을 구타하여 죽였다. 자폭 테러로 인하여 영문도 모르고 죽어야했다.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사일을 개발하여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무력 도발이나 테러,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인권과 평화가 더더욱 절실하다. 리비아나 북한과 같은 국가, IS와 같은 집단, 뿐만 아니라 자기의 자식까지 구타하여 죽음으로 몰고 간 개개인들에게는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소개하는 작품의 제목은 ‘peace’다. 이 작품은 종교와 테크놀로지, 예술이 하나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며 각 나라를 한 마리의 잃은 양에 비유하여 작업을 하는 허왕정의 ‘Look At Me project-App art part 1.5’ 중 2016년 2월 8일의 작품을 차용하여 필자가 최근에 제작한 작품이다.북한 국기를 배경으로 한 화면에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김정은 위원장의 뒷모습이 강하게 부각된 원작과 신문 기사 중에서 ‘장거리 미사일’, ‘개성공단’을 가져오고, ‘통일로 가는 길’, ‘ILUK’, ‘?’등을 혼용하여 꼴라쥬 했다. 그 중에도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십자가와 그 밑에 있는 ‘PEACE’다. 이는 필자가 그 동안 진행한 ‘평화와 통일을 위한 프롤레고메나-ILUK현장’의 연장선으로 평화를 강조한 것이다.

갑이 갑질을 하는 사회, 을이 억지를 부리는 사회는 후진국이다. 그리고 폭력성을 갖고 있는 갑이 갑 질을 해도 을은 말도 못하는 사회는 ‘후진 테러국’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상태에서 평화를 이룩하려면 ‘송양지인’처럼 체면을 따지거나 자애롭게 대할 수만은 없다. 주님께서도 그러셨듯이 때로는 채찍을 휘두르기도 하고, 상다리를 뒤집기도하고, 독사의 자식들이라 질타도 해야 한다. 그리고 숭고한 이들의 피도 흘려야 된다. 

왜, 세상은 죄인이나 폭군이 피 흘리며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죄 없는 이들이 피를 흘려야 될까? 폭력은 실패하고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진리를 알고 있음에도, 지금 처한 이 순간이 답답하여 묻고 또 묻는다. 

지금은 사순절이다. 몇 주 후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이다. 그 은혜로 죄 많은 인간이 구원받을 것이다. 따라서 폭력적인 갑은 저 십자가를 바라보고, 아무 말도 못하는 을은 저 십자가의 은총을 받아 평화롭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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