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효성의 문화칼럼] 낯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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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성의 문화칼럼] 낯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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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2.0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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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성의 성지를 찾아서 (38)
▲ ⓒ방효성 퍼포먼스, ‘또 다른 몸’.

미국 퍼듀대 심리학팀이 어린이들에게 실험을 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집단과 얼굴을 드러낸 집단을 나누어 사탕을 두 개씩 집어가게 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경우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더 많이(67%) 규칙을 어기고 사탕을 두 개 이상 집어 갔다.

필자의 행위예술 중 ‘또 다른 몸’이라는 작품이 있다. 무대에는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등장한다. 필자는 가위로 드레스 아랫단부터 오려나간다. 드레스를 마치 사과 껍질을 벗겨내듯 나선형으로 오려 나간다. 드레스가 잘려 나갈수록 나신의 모습이 드러난다. 점차 가슴 위로 옷이 잘려져 나가면서 젊은 여성은  나신의 모습이 되었다.

필자는 잘려나간 천으로 여인의 얼굴을 감싸기 시작한다. 몸을 감싸고 있던 오려진 드레스 천으로 얼굴을 가렸다. 몸은 나신이 되고 얼굴은 감싸졌다. 무대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관객들은 낯설은 광경에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지 몰랐다. 필자는 여인이 들고 있던 장미의 잎을 뜯어 뿌리기 시작한다. 무대 위에는 장미 꽃잎들이 붉게 내려 앉았다.

행위자는 ‘무엇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가?’에 대한 담론을 던졌다. 벗은 몸이 부끄러운 것일까? 필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죄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의 속 사람. 더러워진 양심과 생각, 드러나지 않는 죄에 대한 상징으로 얼굴을 가린 것이다.

사람은 죄가 드러났을 때, 혹은 부끄러운 일을 당했을 때 얼굴을 가린다. 얼굴은 인간의 내면을 숨김 없이 드러내는 통로인 것이다. 얼굴을 가린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죄 의식에 대한 두려움을 인정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면죄부를 받은양 책임 회피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복면이 우리의 죄를 가리워 줄 수 있을까? 가리고 싶은 얼굴, 즉 죄악으로 가득찬 이 세상은 무엇으로 감추고 가릴 수 있을까? 

우리의 타락한 죄에 대한 부끄러움을 가리워줄 분은 오직 한분 예수님 밖에 없다. 성탄의 계절을 맞아 예수님을 설레임으로 기다린다. 우리가 성탄을 기뻐하는 ㅋ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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