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vs “역사 후퇴” '국정화'에 엇갈린 교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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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vs “역사 후퇴” '국정화'에 엇갈린 교계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5.10.1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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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기독교 역사 서술 늘리는데 도움 될까 촉각
▲ 한국기독교역사교과서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사 교과서의 종교편향 실태를 알렸다.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하고 2017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국정화 반대 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며 헌법정신과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교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한교연과 한국교회언론회 등이 발표 전부터 적극지지를 피력한 반면, 교회협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런 와중에 최근 열린 교계 기자회견에서 ‘역사 교과서 안의 기독교 비중을 늘릴 수 있다면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지지하겠다’는 입장이 발표되면서, 이번 국정화 결정이 추후 기독교 역사 서술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교육부는 12일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는 내용의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을 행정예고했다. 교육부는 다음달 2일까지 관련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확정·고시한다는 계획이다. 이로써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2011년 검정 교과서로 완전히 바뀐 지 6년 만에 국정으로 회귀하게 될 전망이다.

교육부의 발표를 전후해 역사학계 원로와 현직 교수, 대학생들은 국정화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특히 기독교 장로이자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황우여 교육부 장관께’라는 제목의 기고 글을 발표하며 반대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 교수는 “국정교과서는 교과서의 집필과 편찬, 수정과 개편까지 정부의 뜻대로 하는 독점적인 교과서”라면서 “정부가 교학사 교과서 구하기에 올인 했으나 교육 현장에서 참패했던 전례에 비추어 친일·독재를 미화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도 성명을 내고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은 역사의 후퇴이며,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면서 “지금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검인정 교과서들은 지난 이명박 정권의 검인정과정을 통과한 것들로서 이를 문제시 하는 것은 같은 정권의 검인정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는 자가당착”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한교연과 한국교회언론회 등 보수진영에서는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한교연은 지난 7일 성명을 내고 “역사교과서 발행이 검·인정으로 바뀐 뒤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종북좌파 세력들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들의 좌편향적 사고에 우리의 자녀들이 오염되어 가는 현실을 그대로 묵과할 수 없다”면서 검인정 역사교과서가 지나치게 ‘좌편향’ 되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교회언론회도 성명을 통해 일부 현행 교과서가 “박정희 경제 개발은 군사독재 연장수단이요, 김일성의 정적 숙청은 사회주의 가꾸기로 기술”하는 등 ‘좌편향’ 됐다고 지적했다. 현직 교사 288명 중 80.6%가 ‘한국사 교과서를 검정 체제에서 국정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대답했다는 한국교총의 설문조사 결과도 소개했다. 언론회는 또 “세계 각국이 교과서는 검정이나 자유발행제 추세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자유민주주의의 다양성과 그 가치가 지켜질 때 가능한 것” 이라며 “당·정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육부의 지침대로 객관성이 보장된 균형 잡힌 ‘올바른 역사 교과서’가 실현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려도 적지 않다. 교육계, 역사학계의 거센 반발이 계속되는 상황이어서 교과서 집필부터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교과서 집필을 맡게 될 국사편찬위원회를 “이념적 편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수, 진보, 중도를 아우르는 학자들로 집필진을 꾸리고 집필기간도 1년 이상 충분히 확보한다”는 구상이지만, 다수의 전문가들이 이미 국정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여서 결국 교과서 집필에는 친정부 성향의 뉴라이트계 역사학자들만 참여해 진보와 보수의 균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황우여 장관의 말 대로 ‘오류가 없고 이념편향성이 배제된 최고 품질의 역사교과서’를 만들려면 먼저 학계의 마음을 되돌리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또한 하나의 교과서에 사회적 합의와 통솔을 중심으로 기술하되 무게 있는 다양한 이설을 병기하겠다는 공약도 충실히 이행해야 할 것이다.

한편 지난 9일에는 ‘한국사 교과서의 종교편향 실태 보고 및 한국교회의 대책을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교과서에서 한국 기독교의 비중을 늘려달라는 내용을 주 골자로 하는 이날 기자회견은 한기총과 한 장총, 한교연, 한국교계 국회 평신도 5단체 협의회 등이 함께하는 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국정화’와 관련된 언급이 빠지지 않았다. 특히 한기총 이영훈 대표회장의 “한국 개신교의 역사가 교과서에 바르게 쓰인다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이든 검정이든 협력할 것”이라는 발언이 눈길을 끌었다. 이 발언은 당시 교육부의 ‘국정화’ 회귀 방침이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그간 ‘교과서 종교편향’과 맞서 싸워온 교계가 ‘협상카드’를 내민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이어졌다. 현장에 있던 다른 목사는 “국정교과서가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거기에도 역시 기독교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역사 속에 기독교의 공간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현장에 있었던 국회평신도 5단체 협의회 상임대표 김영진 장로는 “이날 기자회견은 어디까지나 역사교과서에서 기독교 부분이 누락된 것을 시정하기 위해 구성한 것”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국정화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국사교과서 종교편향 문제를 국정화와 맞물려서 처리하려다 보면, 자칫 국민들로부터 우리의 주관까지 외면받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며 섣부른 판단을 경계했다.

국정화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는 G20 의장국이자 경제 선진국으로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일궈낸 세계에서 존경받는 나라”라며 “이런(국정화) 문제로 국론이 분열되어선 안 된다. 정치권도 정부도, 교계도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귀담아 듣고, 겸손하게 합의를 이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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