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회화, 둘 중 무엇이 먼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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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회화, 둘 중 무엇이 먼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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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1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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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예술과 하나님의 마음 (5)
▲ 안용준 목사

1766년 독일의 극작가이자 비평가인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은 『라오콘 또는 회화와 문학의 경계에 대해 Laokoon oder uber die Grenzen der Malerei und Poesie』라는 글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문학과 회화가 상이한 영역이라는 문제를 다루었다. 오늘날에는 문학과 회화가 서로 다른 영역이라는 사실이 누구에게나 인정되지만 18세기 중엽에는 그러한 견해가 대담한 발상이었다. 레싱에게서 이러한 견해의 근거가 되는 것이 고대 그리스 조각인 <라오콘 군상 Laokoongruppe>이었다. 전체적으로 라오콘 조각상은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시기에 포세이돈이 보낸 바다뱀에게 물려죽는 트로이의 제사장 라오콘과 그 두 아들이 받는 고통을 묘사하고 있다. 

레싱의『라오콘』에서 강조점은 문학이 조형예술을 포함한 회화와 묘사 방법에 있어서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공간이 화가의 영역이듯이, 시간의 흐름은 문학 작가의 영역이다. 모방에 있어서 문학이 시간 속에서 그 강조점을 찾고 있다면, 회화는 이미지와 색채로 공간 속에서 모방의 수단을 찾고 있다. 즉 회화는 “유일한 한 순간”과 “하나의 관점”에서 묘사하는데 반해, 문학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와 판타지 속에서 회화적인 순간을 다양하게 전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레싱이 회화에 대한 문학의 우위성을 주장한 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문학의 표현 영역이 회화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헬라어에서 이미지는 가시적 형태를 모방한다는 의미 외에도 비현실인 가상의 형상 즉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실체를 형상화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미지의 라틴어 어원인 ‘imago’는 상상하다‘imaginer’라는 동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는 상상력과 이미지가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시간의 개념을 포괄하는 동적인 개념임을 확신할 수 있다. 상상력에 의한 시간도 그것이 소유한 한계를 벗어나 얼마든지 우주론적인 시간과 현상학적인 시간의 무한한 조합을 통해 이미지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독일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가 완성한 <요한계시록>의 이미지를 보면 이에 대한 정확한 실례가 될 것이다. 뒤러는 사도 요한이 환상 중에 본 영광스럽고 거룩한 주님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요한은 부활하셔서 영광의 주가 되신 주님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성령에 감동되어 나팔소리 같은 인자의 음성을 듣는다. 바로 주변을 돌아보던 중 일곱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촛대 사이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손을 모으고 경건하게 꿇어앉아 있다. 

요한은 환상적인 경험을 나누기 위해 우리를 초자연적 영역으로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문자가 이미지를 형성하는 충분한 근거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회화 이미지의 시간적 흐름에 따른 연속성의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은 누구든 예수님의 생명과 사랑 그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들의 참된 소망이 지상의 삼차원성을 초월하여 보좌 앞으로 다가설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현대예술의 이론과 실제에 관한 최고의 보고(寶庫)이자 최후의 보루(堡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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