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탄생 이전부터 하나님 사랑, 에티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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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탄생 이전부터 하나님 사랑, 에티오피아
  • 김목화 기자
  • 승인 2014.12.10 0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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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나 이스텔링! 에티오피아 <하>
▲ 악숨 지역에서 만난 소녀 목동의 뒷모습이 마치 예수님같다.

에티오피아에서의 셋째날. 화창한 날씨가 오늘 하루도 즐거울 거라고 예고하고 있었다. 바하르 다르에서 175km 떨어진 곤다르로 향하는 날이었다. 게다가 비행기가 아닌 버스를 타고 이동할 예정이었다. 아침부터 자동차를 타고 아프리카 대륙을 달린다고 생각하니 무척 들떴다.

한국과 달리 도로사정이 좋지 않은 에티오피아였지만 생각보다 수월했다. 교통 체증도 없었다. 무엇보다 차로 이동하면서 펼쳐진 대자연은 장관이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드넓은 초원, 커다란 암석이 병풍처럼 늘어진 바위산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동하는 내내 길에서 만났던 소, 산양, 말, 당나귀 등 사람과 어울리며 사는 가축들의 모습이 정겹게 다가왔다.

아프리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다
4시간에 걸쳐 곤다르에 도착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황궁 지역 파실게비를 찾았다. 파실게비는 곤다르 역대 황제들이 거주했던 황궁 지역을 말한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중세 영화 속에서만 보았던 그림 같은 궁전이 펼쳐졌다. 난간에서 당장이라도 왕이 모습을 비출 것 같았다.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 유일한 궁전인 파실게비를 찾아오는 유럽 관광객들은 이곳을 ‘아프리카의 카멜롯’이라 부른단다.

▲ 에티오피아 곤다르 지역의 파실게비 황궁터.

1700년 파실게비를 방문한 스코틀랜드 탐험가 제임스 브루스가 고향에 돌아가 아프리카에 엄청난 궁궐이 있다고 전했지만 모두 믿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이라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에티오피아 곤다르에 이렇게 멋진 성이 있다니. 아프리카의 선조들은 정글이나 흙집에서만 살았을 것이라는 편견을 완전히 깬 파실게비였다.

파실게비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사모했던 파실리다스(fasillidas) 황제가 그의 재임 초기인 1632년에 지은 궁전이다. 그후 곤다르는 1855년까지 280년여 동안 에티오피아의 수도였다. 당시가 에티오피아의 황금기였음을 파실게비와 교회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성지에는 궁전을 비롯한 도서관, 요하네스 1세의 법원, 이야수 1세의 궁전, 사자 우리 등 대지만 해도 약 2만 평이다. 대부분의 건축 양식은 당시 퍼져나갔던 스페인 가톨릭과 악숨제국 양식의 혼합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궁전은 훼손된 부분이 많다. 1888년 옆 나라 수단의 무슬림이 침략해 일어난 종교전쟁과 1942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의 폭격 때문이다. 그 이후 남아있는 궁전의 흔적들만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 데브라 비르한 셀라시에 교회에는 한 개도 같지 않은 천사의 얼굴이 144개 그려져 있다.
곤다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데브라 비르한 셀라시에 교회(Debra Birhan Selassie Church)다. 곤다르 중심지에서 조금 벗어나 구릉으로 이어지는 언덕으로 가니 곤다르 주민들의 일상이 골목을 따라 펼쳐졌다. 길을 따라 가니 성벽처럼 높은 벽으로 둘러 쌓인 교회가 나왔다. 이야수 1세가 세웠던 교회이기에 오래 전부터 왕궁의 대접을 받은 곳이었다. 교회 입구에서부터 신도들은 엎드려 기도하고 있었다. 성스러운 곳이라는 이유로 교회 내부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성화가 앞에 걸려 있었고, 벽에는 성경 속 주요 장면들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 교회가 특별한 이유는 천장에 있다. 에티오피아 ‘천지창조’라 불러도 손색없는 144개의 천사 얼굴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천장에는 단 하나의 표정도 같지 않은 144개의 천사 얼굴이 1694년 개관 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교회 밖으로 나오니 벽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며 성경을 읽는 소녀가 있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곳 사람들이 교회를 자주 찾으며 성경을 읽고, 눈물의 기도를 드렸을 모습을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그토록 찬란했던 에티오피아 곤다르는 왜 예전과 다른 걸까. 많은 생각과 함께 에티오피아의 밤은 깊어갔다.

오직 믿음이었기에 가능했다
에피오피아는 소도시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참 많다. 그 중에서도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성지가 있다. 바로 랄리벨라에 위치한 11개의 석조 동굴교회다.

공항에서 내린 후 해발 2,600m 고지에 위치한 랄리벨라로 가기 위해 차로 20분즈음 가니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암석으로만 이뤄진 불모의 고원지대가 끊임없이 들어서 있었다. 이곳에 아프리카 성지 중의 성지로 꼽히며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는 석조 동굴교회가 있다니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마침내 도착하니 관광안내소 입구에서부터 몸수색이 진행됐다. 반석 위에 연결되어 있는 11개의 동굴교회가 더 궁금해졌다.

▲ 바위를 수직으로 파내려 가는 방식으로 지어진 메드하네알렘교회. 교회의 벽과 기둥, 천장 등 모두가 하나의 돌을 파서 만들었다.
눈 앞에 펼쳐진 첫 동굴교회는 바위를 수직으로 파내려 가는 방식으로 지어진 메드하네알렘교회였다. 교회의 벽과 기둥, 천장 등 모두가 하나의 돌을 파서 만든 것이었다. 비록 비바람에 노출된 교회를 보호한다는 취지에 설치된 철제 기둥과 지붕이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이어지는 동굴교회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이외에도 하나의 바위를 깎아내려 만든 교회가 10개나 더 있었다. 오직 믿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십자가 형태로 지하의 돌을 파서 만든 기오르기스교회는 세계 8대 불가사의라는 명성에 걸맞는 교회였다. 지상으로 머리를 살짝 드러낸 듯한 십자가 모양의 지붕은 천국과 세상을 잇는 디딤돌같았다.

▲ 십자가 형태로 지하의 돌을 파서 만든 기오르기스교회는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남아있기도 하다. 지상으로 머리를 살짝 드러낸 듯한 십자가 모양의 지붕은 천국과 세상을 잇는 디딤돌같다.
▲ 기오르기스교회 내부 천장 모습.

랄리벨라의 동굴교회는 지상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바위를 통째로 파서 지하에 만든 교회들은 지하 통로를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바위를 파서 계단과 입구, 내부 공간까지 완벽한 각기 다른 모습의 교회 11개를 짓기까지는 23년의 시간이 걸렸다. 교회 하나당 약 4만여 명의 인부가 공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 랄리벨라의 동굴교회는 지상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진에서 보이는 아래 바위가 석조 동굴교회다.

랄리벨라 왕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후 자신의 나라를 ‘제2의 예루살렘’으로 만들고자 시작된 교회 건축을 보니, 한국에도 제2의 예루살렘을 상징하는 교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의 역사의 숨결이 그대로
에티오피아의 역사는 크게 고대의 악숨 왕조, 중세의 랄리벨라 왕조, 근세의 곤다르 왕조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처럼 기록물을 전혀 남기지 않은 에티오피아인지라, 모든 에티오피아 역사는 추정으로만 남을 뿐이다.

▲ 아프리카에서 에티오피아는 유일하게 문자와 전통 음식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이 음식은 에티오피아의 전통음식 '인젤라'.
악숨은 에티오피아 역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를 전파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기원전 400년경 에티오피아는 고대 국가로서의 틀을 악숨에서 형성했다. 문헌상에서는 1세기경 이집트 뱃사람들에 의해 기술되어 처음 언급됐다. 노아의 증손자인 악숨아위(Aksumawi)가 왕국을 건설했다고 추정하고 있으며, 그 역사는 시바 여왕(Sheba)까지 이어진다.

에티오피아는 성경에 60번 이상 언급된 나라다. 이미 고대에서부터 기독교를 국교 삼아 역사의 꽃을 피운 에티오피아다. 특히 악숨은 재미난 성경 이야기가 많이 서려있는 도시다.

지혜의 왕 솔로몬의 명성을 들은 시바 여왕은 그가 매우 궁금했다(역대하 9장). 솔로몬의 소문이 에티오피아까지 이르렀다니, 그만큼 솔로몬 왕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솔로몬 왕은 멀리서 온 시바 여왕을 극진히 대접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사랑에 빠져 아들 메넬리크 1세를 낳는다(열왕기상 10장).

이스라엘을 방문한 시바 여왕이 에티오피아로 돌아와 제2의 예루살렘으로 만들고자 했던 도시, 악숨. 당시의 부와 명예를 증명하듯 악숨에는 고대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다.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오벨리스크는 고대 악숨 왕들의 무덤을 표시하는 묘비다. 높이 22미터에 이르는 오벨리스크는 하나의 화강암을 조각해 만들어졌다. 오벨리스크의 층은 그 아래에 묻혀 있는 무덤의 수를 말한다. 가장 큰 오벨리스크 무게는 500톤이 넘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오벨리스크는 현재 넘어져 부서진 채 방치되어 있다.

▲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오벨리스크는 고대 악숨 왕들의 무덤을 표시하는 묘비다. 높이 22미터에 이르는 오벨리스크는 하나의 화강암을 조각해 만들어졌다. 앞에 무너진 오벨리스크는 기초를 잘못 계산해 쓰러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악숨에는 모세의 십계명 석판 원본이 보관된 성궤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성궤가 보관된 곳은 성 마리아 시온교회다. 솔로몬 왕이 성궤를 보관하기에 가장 안전한 곳이 에티오피아 악숨이라 호명해 메넬리크 1세가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서구에서 아직도 찾아 헤매는 성궤가 바로 악숨에 있다고 믿는다. 성 마리아 시온교회는 외부인들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한 상태다.

▲ 성궤가 보관되어 있다고 알려진 악숨 성 마리아 시온교회.

▲ 시바 여왕이 솔로몬 왕을 만나러 가기 위해 만들었다는 지하 통로 입구.
이외에도 악숨에는 시바 여왕의 흔적이 가득하다.

특히 시바 여왕의 무덤가에는 특별한 지하 통로가 남아있다. 솔로몬 왕을 보러가기 위해 시바 여왕이 몰래 만들었다는 지하 통로다.

마차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통로는 예루살렘까지 이어진다는 설이 있다.

이보다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가 또 있을까.


▲ 추측으로 남아 있는 시바 여왕 왕궁터.
▲ 시바 왕조 목욕탕은 거대한 수영장같다. 오늘날에도 악숨 주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이용되고 있다.

어느새 아디스 아바바에서 시작해 데브레 자이트, 바하르 다르를 지나 곤다르, 랄리벨라, 악숨까지 에티오피아 북부 전반의 여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모든 것을 꼼꼼히 보기에는 일주일간의 여정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짧은 일정 속에 무수한 에티오피아의 기독교 유적지를 접한 탓인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고 단단해진 기분이다.

한 번 더 에티오피아를 찾는다면 가족들과 함께하고 싶다. 혼자서만 에티오피아를 느끼기에는 그 땅의 모든 자연이 너무나 아름답고, 유적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숭고함은 이루 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로 떠나보고 싶어 한다면, 에티오피아를 강력 추천한다.

▲ 랄리벨라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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