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부딪히는 ‘돌’소리 반주삼아 찬양해요”
상태바
“벽에 부딪히는 ‘돌’소리 반주삼아 찬양해요”
  • 김목화 기자
  • 승인 2014.12.19 10: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3의 눈으로 본 에티오피아, 그리고 ‘핍박’잊은 한국교회
▲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북부지역은 에티오피아 정교회 세력이 막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제대로 된 교회조차 세우 수 없을 정도로 핍박 받는 기독교인들이 많다. 하지만 핍박의 땅에서 순교를 각오하며 예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2년 전 랄리벨라 지역에서 일어난 기독교 탄압으로 직장과 집을 잃은 A장로가 취재진 이동 차량에 몰래 탑승해 핍박 받는 상황을 전하고 있다. 사전에 만나기로 했던 그는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압박으로 취재진을 만날 수 없었다. 취재진이 떠나기 전 랄리벨라 공항 앞에서 짧게나마 겨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랄리벨라에서 만난 지하교회 이야기
악숨에서 피어나는 복음의 현장

아프리카를 찾을 때 흔히들 하는 조언, 아니 혹은 경고가 있다. “아프리카의 마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까만 피부에서 더욱이 보석처럼 빛나는 ‘아프리카의 눈동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취재차 방문한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아프리카의 눈동자는 그 말과 달랐다.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포토(사진, Photo)”라고 말하는 아이들이었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사진 찍어달라는 말은 곧 이어 ‘돈’을 요구하는 손짓으로 돌아왔다. 특히 돈을 지불하지 않았을 때 돌아오는 싸늘한 시선과 생떼는 되려 상처가 되기도 했다.

에티오피아에서 며칠을 지냈을까. 방문하는 지역마다, 장소마다 만나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참 착했지만 어딜가도 아이들만큼은 “포토” 그리고 “머니(돈, money)”를 요구했다. 그곳에서 만난 눈동자들은 왜인지 매섭게 다가왔다. 물건을 계속 사달라며 생떼쓰는 아이의 눈에서는 살기까지 느껴졌다. ‘한국 집에 빨리 가고 싶다’라고 생각이 들 즈음, 우연찮게 아프리카의 마법에 빠지게 되었다. 랄리벨라에서 만난 어느 지하교회 A 장로의 눈동자였다.

내가 지나치며 만나온 수많은 아프리카의 눈동자와 확연히 다른 눈동자였다. 랄리벨라를 떠나기 전 공항가는 차 안에서 몰래 만난 그의 얼굴은 다른 아프리카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온화한 빛으로 가득했다.

사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북부지역은 교회보다 에티오피아 정교회가 난무하고 있다. 샤머니즘과 정교회가 혼합된 에티오피아 정교회다.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오직 성직자만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일반 성도들은 사제들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예수님의 신성만 인정할 뿐 인성을 부정한다. 구약성서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기도 하다.

그 세력은 북부지역(곤다르, 랄리벨라, 악숨 등)에 유독 막강하게 자리잡고 있어 교회가 핍박받고 있는 상황. 특히 랄리벨라는 핍박의 정도가 심해 교회를 세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정도다.

랄리벨라 지역에는 소수의 개신교인들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렵게 만날 수 있었던 A 장로는 어릴적 방문한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다가 성령 체험을 했다. 함께 예배를 드렸던 모든 성도들에게도 성령이 임해 랄리벨라에 부흥의 숨결이 일기 시작했다. 내면에 자리잡았던 사상과 비전까지 완전히 바뀌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동안 에티오피아 정교회 사제를 통해서만 기도해야 하는 줄 알았던 그들은 처음으로 하나님 안의 자유함을 느꼈다. 마음껏 기도할 수 있었고, 찬양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2년, 2년 전이었다. 폭동이 일어났다. 에티오피아 정교회 사제와 성도들, 경찰과 관공서 모두가 한밤 중에 들이닥쳤다. 별다른 무기가 있던 건 아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이들에게 돌을 던졌다.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일터와 집은 한순간에 엉망이 되었다. 돌을 맞은 성도는 크게 다쳐 큰 도시 병원으로 이송 될 정도였다. 심지어 다니고 있던 직장에서는 해고를 당했고, 결혼을 앞두었던 처녀는 신랑 측에서 에티오피아로 정교회로 다시 회심하지 않으면 결혼을 못한다고 해 파혼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랄리벨라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모았던 헌금은 이때 다친 이들을 치료해주느라 병원비로 대부분 사용되어 얼마 남아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저는 장로라는 이유로 랄리벨라에서 직장을 얻을 수도 없고 가게를 차릴 수도 없습니다. 랄리벨라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저는 예수님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랄리벨라에는 50~60명의 개신교인들이 가정교회 형태로 함께 예배드리고 있다. 서너 명 정도만 모여 넘치는 신앙심을 억누르며, 자제하며 조용히 숨어 예배 드리고 있다. 전도의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하지만 워낙 핍박이 심해 전도를 받은 성도들은 ‘돌을 맞아도 괜찮다’는 각오가 확인되었을 때에서야 교회 예배에 함께 참여할 수 있었다.

특정 지역을 부여받아 마음껏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 마을을 만들려고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압박으로 랄리벨라의 그 어떤 지역에서도 예배가 설 자리는 허락되지 않았다.

A장로에게 지하교회와 성도들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의 비전은 하나님의 왕국, 천국을 꿈꾸며 모두가 한 가족이 되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이어가기가 너무 힘든 삶을 살고 있지만 예수님만이 우리의 승리이며, 만왕의 왕이라는 믿음을 받았기에 이곳의 핍박을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다만 부탁드릴 것이 있다면, 랄리벨라가 하나님의 땅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기 바랍니다. 또한 많은 이들이 우리의 상황을 알 수 있도록 알려주기 바랍니다.”

▲ 악숨에 7년 전 세워진 생명의말씀교회는 그동안 갖은 핍박으로 몇 번이나 건물을 다시 세웠다. 8개월 전에도 타종교의 핍박으로 담이 무너지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의 성도들은 전혀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 구원, 소망, 길”이라며 힘을 내며 전도에 힘쓰고 있다. 왼쪽 사진 교회 마당 바닥에 보이는 돌들은 다 ‘핍박의 돌’이다.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에티오피아 북부 악숨 지역은 교회의 핍박이 랄리벨라보다는 덜했다. 랄리벨라는 교회 자체를 세울 수 없었다면, 악숨은 그나마 교회가 세워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비록 이곳의 교회도 돌을 맞은 흔적들이 난무했지만.

방문한 교회는 새생명말씀교회. 교회에 들어서 올려다 본 천장은 마치 밤하늘 같았다. 고작 슬레이트 석면 한겹으로 덮여진 지붕은 여기 저기 구멍이 나 빛이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밤하늘의 별 같았다. 유리 대신 철로 된 창문은 반듯한 제 모습을 갖춘 것이 하나도 없었다. 돌을 맞아 구겨진 철판이 교회의 모진 세월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당 한켠에는 어른 주먹만한 돌들이 한무더기 쌓여 있었다. 교회로 날아온 돌들을 치워놓다보니 어느새 하나 둘 모인 돌들은 돌무더기가 되어 있었다. 전도용으로 배포하려던 신양성서가 가득했던 창고는 누군가 불을 질러 다 타버렸다.

새생명말씀교회는 담장이 높아 밖을 내다볼 수 없다.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담을 높게 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배를 드릴 때 교회의 대문만큼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게 열어 놓는다고 한다.

교인들은 오로지 목소리로만 찬양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키보드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우리에게는 굉장히 많은 격려와 기도가 필요할 뿐,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키보드도 필요 없습니다. 저들이 던지는 돌이 교회에 맞을 때 나는 소리에 맞춰 우리는 찬양을 합니다. 훌륭한 반주가 있는데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굉장한 신앙이었다. 너무나도 순수한 신앙이었다. 외국인 선교사도 아니었다. 에티오피아에서 스스로 일어나고 있는 복음이었다.

▲ 악숨 새생명말씀교회 지붕에서 빛이 새어들어오고 있다. 핍박의 돌이 떨어진 흔적들이다.

악숨을 떠나는 길에 우연히 교회에서 만난 에티오피아 청년을 만날 수 있었다. 빈손으로 교회를 갔던 차라 뭐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마침 잘 된 상황이었다. 에티오피아의 복음을 위해 애쓰는 이들에게 줄 수 있는 물건을 다 꺼냈다. 그래봤자 몇 안 되는 옷가지와 몇몇 물건들이었지만, 기쁘게 받아주어 으레 고마웠다.

에티오피아에서 핍박 받는 교회를 눈으로 직접 보니, 세계 곳곳에서 어렵게 선교하고 있을 선교사들이 생각났다. 한국에서 엄청난 신앙의 풍요를 누리며 살고 있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내가 예배자로 설 수 있는 이 땅을, 마음껏 기도와 찬양을 할 수 있는 교회를 허락하심에 감사했다.

한국교회도 핍박받았던 때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날의 헌신과 순교, 눈물을 너무 막연하게 생각하거나 잊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의 에티오피아 교회가 고개를 숙이게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