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권의 문화칼럼] 무소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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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의 문화칼럼] 무소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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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1.18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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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의 기독교미술 간파하기 (29)
▲ ⓒ임동준, ‘예수’, 목판화

청년시절부터 필자는 동양의 사상과 서양의 물리학의 아우름에 관심이 많았다. 이를테면 ‘東道西器’는 잘 알려져 있으니 ‘西道東器’라고나 할까? 그런 중에 1991년 ‘無所不在’의 주제로 개인전을 했다. 당시 일부 어른들은 ‘무소부재’를 두고 무식한 젊은이라 하였다. 하지만 나의 ‘무소부재’는 ‘신’이 아닌 ‘공간형 행동’이었다. 즉 신이라는 존재가 아닌 그런 존재가 할 수 있는 행동양식으로 보았던 것이다.

미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공간과 시간이 무엇인가를 더 깊이 알아야 했다. 그 후 물질과 비 물질, 질량과 파동, 시간과 공간이란 개념에 몰두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기독교미술과도 개설하고 지금은 예술과 과학, 그리고 종교를 하나로 융합하고자 독특한 작품과 별난 실험들을 하고 있다.

소개하는 작품은 기독교미술과 학생 임동준의 ‘예수’라는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예수님은 우리의 곁에서 언제나 우리를 보살핀다. 이처럼 ‘예수님은 어디든 존재한다’는 말이 이 작품의 시작이다. 그리고 십자가는 우리들 모두의 죄를 전부 짊어지고 죽은 예수님의 상징이다. 작품을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가 아닌 가로등에 매달려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은 예수가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이와 같이 예수는 어디에나 있다는 말을 단 하나의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또한 판화를 통해 수십, 수백 장도 찍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 언제 어디서나 수많은 예수님이 끝없이 나타남을 상상할 수 있게 했다. 인쇄물이 마음에 들 때까지 찍어가면서 목판은 지저분해져 간다. 그 지저분해진 원판까지 작품이다. 이는 “보는 사람이 예수님에 대해 또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주고 싶음이다”고 설명한다.

그렇다. 매끈한 목판이 과정을 통해 작품을 만들 듯, 우리의 주님은 자신의 죄로 인해 고통 받고 멸시받은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죄를 위하여 지금까지 깎이고, 찢기고, 조롱당하시는 것이다.

이제는 겨울, 성탄이 다가오고 있다. 감각적인 즐거움을 위해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특히 이 시대의 젊은 심령들, 어디에나 계신 주님을 알게 하소서, 그리고 주님의 은총 가득하소서.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영원불변이신 우리의 주님! 살아계셔서 우리의 삶에 관여하시는 주님! 늘 찬양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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