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환의 문화칼럼] 헉! 대표기도에 주기도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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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환의 문화칼럼] 헉! 대표기도에 주기도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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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6.0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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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의 얼렁뚱땅 세상보기(3)

지금이야 좀 나아졌지만 30~40년 전 미국 이민교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다가도 동족을 만나는 수단으로, 주말이라 심심하고 할 것 없어서, 그리고 사업수단으로 교회를 찾아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교회에 가면 고국 소식이나, 미국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취업 정보 등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는 장소가 곧 교회였기 때문에 이민교회는 이민자들에게 안식처였다.

나도 그랬다. 지금으로 정확하게 34년 전. 교회 문에 발을 들여 놓은 지 6개월즈음 되었을 때, 예배 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한 집사님이 주일예배 대표기도 순서를 맡았다. 집사님도 교회 문을 드나든지 얼마 되지 않은 초신자였다.

대표기도 순서를 맡은 집사님이 천천히 느긋하게 강대상 마이크 앞에 섰다. 그런데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1분 정도 침묵이 흘렀다. 다들 황당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사님은 마침내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대표기도 시간에 기도가 아닌,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것이었다. 모두들 또 한번 황당해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집사님은 주기도문 중간즈음까지 가다가 가만히 있기 시작했다. 30초 정도 정막이 흘렀다. “다시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틀리지 않고, 또박또박 주기도문을 다 암송하고 내려온 집사님이었다.

그때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예배 시간에 킥킥대고 난리를 쳤다. 정말 잊지 못하는 황당한 사건이었다.

그 황당한 사건이 지난 일 년 후 그 집사님과 우연한 기회에 신앙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내 신앙 양심으로는 주기도문의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이 부분에서는 기도 하기 힘들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주기도문 할 때는 항상 이 부분을 빼놓고 한다는 거였다.

지난 주일, 아침 예배를 드리는데 마지막 찬송으로 찬송가가 317장을 불렀다. 마지막 가사가 ‘내 생명도 주 예수께 바칩니다’였다. 이 찬송을 부르는데 갑자기 34년 전 그 황당한 사건이 떠올랐다. 30여 년 동안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대표기도로 주기도문을 하신 집사님, 신앙 양심 때문에 주기도문의 한 부분을 일부러 빼버린다고 말씀하신 집사님이 내 가슴에 메아리쳤다.

나 또한 내 신앙 양심으로 과연 “내 생명도 주 예수께 바칩니다”라고 부를 수 있는지….

오늘 아침, 난 찬송가 가사를 고쳐서 속으로 혼자 불렀다.

“내 생명도 주 예수께 바치려고 노력합니다. 아멘!”

그 집사님을 다시 만난다면 꼭 다시 물어보고 싶다. 주기도문 드릴 때 아직도 그 부분 빼고 기도하시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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