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교본은 ‘성경’ ... 겸손한 자세로 화합의 길 열어야
상태바
통일의 교본은 ‘성경’ ... 겸손한 자세로 화합의 길 열어야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4.06.03 1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통일시대, 교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1950년 동족상잔의 비극이 시작된 후 우리나라는 한 핏줄을 나눈 한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60년 넘도록 총부리를 겨누며 적대적 긴장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북한의 평양 땅엔 ‘복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독재 체제 아래 갇힌 북한 주민들은 굶주림과 억압의 고통 속에 핍박을 당하고 있다.

수많은 통일 문제 전문가들은 “통일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도적같이 이를 '통일‘의 대비를 주장한다. 그러나 교회는 실질적인 통일에 대한 체감온도가 낮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조차 모른다. 지난 29일 창립포럼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을 알린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총회 산하 남북통일위원회(위원장:양병희 목사)는 목회현장으로 파고드는 통일운동에 대한 목표를 수립했다. 통일 일꾼을 양성할 뿐만 아니라 전 교회가 통일준비에 나서야 한다는 통일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백석총회를 넘어 한국 교회 전체가 공감하는 평화통일 전문단체를 만들겠다는 것.

창립 포럼에서는 이 같은 의지가 엿보였으며, 앞으로 남북통일위원회가 나아갈 방향성을 정립하는 시간이었다. 포럼의 현장으로 들어가 본다.<편집자 주>

#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목회선교 전략
양병희 목사 / 백석 남북통일위원장

하나님 중심의 통일운동은 먼저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이며, 통일운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나타나기를 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을 도구로 삼아 우리의 통일을 주님께서 이루어 나가신다’는 굳은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바는 세상 가운데 있는 분열은 죄의 결과이고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화해하고 화평케 하는 직무를 맡았다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임을 확신해야 한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남북의 민족통일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임을 확신할 수 있다. 통일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통일에 대한 무관심과 부정적인 태도를 버려야 하며, 한국 사회에 있는 이런 통일에 대한 무관심과 부정적인 생각과 태도를 교정하도록 해야 한다.

분단 이후 남한과 북한은 각각 상이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와 이념을 수용하고 발전시켜왔다. 이런 점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관점이 필요하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제도적으로 하나님은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특수한 상황을 인식하고 북한 선교를 준비해야 한다. 자유로운 우리 입장에서 북한에 접근한다면 선교는커녕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정치적 접근을 지양하고 지나치게 서두르거나 포기해서도 안 되는 것이 통일이다. 더불어 ‘사람’의 통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단순히 남과 북의 물리적인 통일이 아니라 사람의 통일, 함께 사는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 선교는 당장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보다 의약품이나 빵공장, 국수공장 같이 북한 주민의 피부에 와 닿는 사회봉사의 장을 넓히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인도주의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 빠른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방향이 잘못되면 더 큰 불행이 올 수 있다. 문화적인 충격이나 빈부격차에 의한 상대적 소외감이라든지, 결핵이나 전염병의 대비라든지 단기간에 목표를 성취하려는 빠른 통일보다 남북의 올바른 인식을 공유할 수 있는 바른 통일로 접근해야 한다.

통일시대를 위해 교회는 탈북자들을 통일 역군으로 도와야 한다. 우리 사회에 2만 6천여 명의 탈북자들이 있다. 이들을 포용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2천4백만 명의 북한주민을 품을 수 있겠는가. 탈북자들은 생사를 걸고 넘어온 형제들이다. 이들을 돌보는 일이나 정착하도록 도움을 나누는 일이 통일의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NGO를 통한 남북교류의 활성화도 중요한 전략이다. 남한 종교단체들의 입장에서는 접근자체가 쉽지 않은 북한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은 물론, 남북 교류협력의 장을 형성하여 통일한국으로 가는 과정에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기독교 NGO의 역할을 상당히 중요하다.
통일 헌금과 통일기도회도 열어야 한다. 백석 남북통일위원회도 총회를 통해 1년에 한 번씩은 전국 교회가 통일 헌금을 해야 할 것이다. 독일 통일을 이뤄낸 기도운동도 필요하다. 남북통일도 하나님이 휴전선을 무너트려 주셔야 이루어질 수 잇을 것이다.

# 구약성경으로 읽는 남북통일운동
김진섭 교수 / 백석대 구약학

개혁주의신학 노선에서 볼 때 언약국가로서의 구약 이스라엘은

더 이상 영속하지 않지만, 영적 이스라엘로서의 신약교회는 주 예수님의 보혈로 맺은 새 언약 공동체로서 구약이 명시한 ‘언약의 복과 저주’가 여전히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지역사회와 그들이 속한 특정 국가와 세계라는 6중 동심원을 그리면서 적용될 수 있다는 ‘문화-선교적 사명’의 맥락에서 레위기 26장을 적용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교회가 구심점 역할을 감당한 한국 근세사를 언약국가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다. 레위기 26장이 명시하는 언약의 복과 저주가 가장 극명하게 성취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세계 최악의 불량, 극빈국가인 북한과 세계 최대 선교, 기도국가인 남한의 현실을 다시 한 번 직시하게 된다.

레위기 26장의 맥락에서 북한 현대사에 임한 언약적 저주의 참혹한 양상은 복음적인 언약의 가정에서 양육된 김일성이 주 예수님의 복음을 배도하고 주창했으며, 3대로 이어지는 주체사상과 그에 따른 기독교 말살운동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자신을 신격화하여 북한 전역에 3만5천 개의 우상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함으로 인해 초래한 ‘주권의 저주’가 곧바로 ‘국민과 영토의 저주’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주체사상이 곧 김일성 유일사상이요, 김일성 제일주의의 신흥종교라는 관점에서 8.15 해방 이후 김일성이 주도한 종교에 대한 제한, 탄압, 말상, 역이용 등의 4단계 정책을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북한은 사실상 ‘지구상에서 종교가 없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국민의 저주는 김일성 부자의 우상숭배와 기독교 박해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너희 수고가 헛될지라”는 국민의 저주는 “땅은 그 산물을 내지 아니하고 땅의 나무는 그 열매를 맺지 아니한다”는 레위기 26장 20절과 맥을 같이 한다. 질병 만연현상 역시 레위기 26장 16절에 ‘곧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북한의 의료보건 수준은 남한의 1960년대 초 혹은 그 이전 수준이며, 실제로 주민들이 누리는 의료혜택은 훨씬 열악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역사의 주권자 하나님의 언약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으며, 세계사 역시 하나님의 구속사이다. 레위기 26장의 복과 저주의 말씀이 오늘날에도 적용되고 있다. 궁극적인 종말론 심판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온전히 성취되겠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나라는 하나님에 의해 복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죄 가운데 사는 자와 국가는 저주를 받는 현세적 심판이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레위기 26장 1절에 기록된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나라가 불행하게도 우리 민족 2400만 명이 사는 북한 땅이라는 사실에 큰 슬픔과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 한국 교회는 남북으로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는 사명이 부여되어 있음을 확고히 하고 먼저 호남과 영남의 동서화합을 실례로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더 겸비하고 회개하면서 바로 서야 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선교적 사명을 다함에 있어서는 성육신하셔서 십자가를 몸소 지신 예수님을 본받아 자기희생, 겸손, 용서, 대속적 사랑을 실천하려는 ‘성육신적 통일신학’을 견지하는 개혁주의생명신학의 ‘나눔운동’으로서 북한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화 시켜야 할 사명을 완수하여야 할 것이다.


# 교회와 정치의 파트너십
주도홍 교수 / 기독교통일학회 회장

한국 교회 그 중에서도 다수인 한국 보수적 장로교회는 신학적으로 개혁신학을 표방하고 있지만 복음주의적 이원론을 극복하지 못한 채, 바른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공공신학의 필요성이 요청된다. 사실 개혁신학은 그 어떤 신학이나 사상들보다 정치에 대한 많은 관심과 참여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전적 부패를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동족상단과 분단 그리고 남북의 원수 맺기와 남남갈등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무서운 죄악인가를 먼저 인식해야 한다.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한 이념적 남북갈등은 남남갈등으로 번졌다. 분단의 상처, 불신과 미움은 또 다른 분열과 미움을 잉태했다. 한국 교회의 분열과 파당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이런 세상과 닮아 있다. 더욱이 한국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분열의 세상을 치유하려하기보다는 분열의 큰 축이 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망가진 사람들은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 십자가로 원수 되었던 죄악의 담을 허시고 하나 되셨다. 우리가 받은 복음은 예수님이 다 이루셨던 진리이다. 성경이야말로 통일의 교본 중의 교본이다. 순수, 관용, 용납, 겸손, 온유, 그리고 예수 사랑으로 한국 교회는 통일운동에 나서서 정부의 틈새를 메꾸는 좋은 파트너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하겠다.

사실 남북분단을 극복하는 문제에 있어서 어쩌면 한국 정부는 현실적으로 한계에 부딪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남북관계를 교회의 길에 서서 비정치적으로 풀려는 자세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곧 인도주의의 사랑의 길이라 할 것이다.

또 통일은 진보보수 우파좌파로는 안 되며, 만약 그런 식으로 통일이 된다 해도 결국 또 다른 분열에 휩싸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분명한 것은 오늘 한국 정치의 수준으로는 결코 온전한 통일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다. 법과 땅의 통일을 이룬다 할지라도 사람이 하나되는 마음의 통합화는 요원하다. 진정한 통일은 예수 안에서 죄악과 잘못을 회개하고 이들 모두가 함께 가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남북 분단의 상황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지를 묵상하여 실천하는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곧 교회가 국가의 파트너로 나서는 일이다.

한국 교회의 남북관계에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독교통일연구소를 적극 유치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자신의 위치에서 갖는 정보로 북한을 상대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가 내놓는 자료도 중요하지만 한국 교회가 스스로 이 문제를 연구하여 통일 전 교회의 할 일, 통일 후 교회의 역할이 무엇일까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남북통일에 있어 한국 교회의 역할을 바로 알아 그 길을 교회답게 가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