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인 가치관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수용하는 포스트모던 시대. 오직 하나의 정확한 해석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인식론적 절대주의가 무너진 현 시대에 ‘해석학적 실재론’이 인식론의 새로운 대안이라는 의미 있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24일 오후 2시 새문안교회에서 ‘기독교 철학과 개혁신학’을 주제로 열린 한국개혁신학회와 한국기독교철학회 공동학술심포지엄에서 김영한 교수(기독교학술원장)는 “포스트모던 사회 속에서 기독교 지성인이 해석학적 독단론과 상대주의 둘 다 피할 수 있는 길은 ‘해석학적 실재론의 길’”이라고 밝혔다.
“오늘날 지식인들이 토대주의가 무너지고 해체주의가 득세하는 포스트모던 전환 속에서 혼란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 그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진리와 가치는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인간의 삶에 실용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그가 해체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형태의 토대주의를 제시한 것이 바로 ‘해석학적 실재론’이다. 이는 근본주의의 해석학적 독단적 태도와 교만, 그리고 해체주의의 진리에 대한 허무적 태도를 극복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
김 교수는 “‘해석학적 실재론’은 인식과 해석에 있어서 주관성의 불가피한 역할을 인정하나, 인간은 한정된 오류가 있는 해석의 틀을 가지고 세계와 텍스트를 본다고 인식한다”며 “이는 인식론의 포스트모던 패러다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패러다임은 지식의 토대에 대한 인간 주체의 상대적인 지위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완화된 합리성을 추구하는 부드러운 토대주의를 천명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그는 자신만이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인식론적 근본주의자들의 문제로 “의미의 텍스트 의미와 초월을 인정하나, 다른 자의 진리 주장은 경청하지 않으며 독단에 사로잡혀 교만과 과욕에 의해 텍스트의 의미와 초월이 가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므로 텍스트 자체인 성경보다 인간이 만들어낸 주석이나 교리가 더 중요하다고 과욕을 부리게 되었다는 것.
특히 그는 이러한 근본주의자들의 문제와 연관된 대표적 사례로 WCC 부산총회에 대한 근본주의자들의 인식과 개최 반대 입장을 들었다.
김 교수는 “근본주의자들은 WCC 총회 의장 알트만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을 믿지 않고 여전히 자기들이 가진 선입견을 그대로 투사시켜 WCC를 ‘적그리스도’요, 부산총회 참가는 ‘제2의 신사참배’라고 매도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오류 가능한 인간 주체의 오류 가능성은 진리의 궁극적 토대인 최종의 텍스트, 하나님 말씀 성경에 의하여 수정되고 검증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 ‘해체주의’는 인간 주체를 중심으로 한 이성적 진리의 명증성을 확보했던 고전적 토대주의를 붕괴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의미의 실재성까지 부인함으로 절대적 진리로서의 텍스트의 메시지를 부인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석학적 태만’이라고 설명한 김 교수는 “해석학적 태만은 성급하게 텍스트 지식과 의미의 실재성과 텍스트인 진리 자체를 부정해 버렸다”며 “이는 독자의 양심의 자유와 진리에 대한 책임을 부정함으로써 인식론적 허무주의로 나간다”며 우려를 표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인식론적 근본주의와 허무주의의 대안을 ‘해석학적 실재론’의 구조에서 찾았다.
그는 “‘해석학적 실재론’은 신학적 근본주의나 자유주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며 자기 교파만 진리를 가졌다는 신학적 근본주의에 빠지지 않는다”며 “아울러 신학적 진리를 부정하는 신학적 자유주의도 배격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해석학적 실재론’은 인간이 저지르는 오류를 인정하는 겸손, 인간 밖의 진리에 대한 확신, 이에 대한 헌신과 증언의 해석학이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