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태화의 문화칼럼] 4•16 이후의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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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의 문화칼럼] 4•16 이후의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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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5.1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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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의 종횡무진 문화읽기 (17)

기독교가 역사의 종교임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세계는 광대하고 의미심장한데, 그 가운데 ‘시간’ 또한 그렇다. 모든 피조물은 시간이라는 질적, 양적 세계를 관통하게 되어있다. 인간이 이 시간대를 지나는 흔적을 ‘역사’라 부른다. 역사는 인간의 삶과 문화를 투시할 수 있는 궤적이요, 증거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역사라는 거울을 주셔서 사랑과 공의의 세계를 이루어가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연같은 사건이라 할지라도 역사적 시각으로 성찰해야 한다. 단언컨데 기독교가 이 태도를 간과한다면 미래는 없다.

제2차 세계대전은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사건으로 남아있다. 기독교가 교만할 수 없는 이유는 가장 비인간적 대규모 살상이 기독교 문화권에서 발발되었다는 점이다. 종교개혁의 나라 독일이 나치에 점령당하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완성한 영국과 그 연합국에게 총칼을 겨루었다. 이에 합세하여 유럽은 갈라지고 전쟁으로 파멸을 선택하였다. 기독교는 과연 어떤 종교란 말인가? 사랑과 평화의 복음을 세우신 구원주 예수 그리스도를 앞세워 서로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죄악은 우연한 충돌이요 충동으로 결코 설명될 수 없다. 기독교는 최소한의 반성과 성찰을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나치 시대 이후의 기독교’, ‘세계대전 이후의 기독교’, ‘아우슈비츠 이후의 기독교’라는 말로 등장했다. 기독교가 기독교의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서 기독교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주 예수께서 걸어가신 ‘좁은 길’을 마다하고 ‘넓은 길’을 걸어가는 기독교는 과연 기독교라고 할 수 있을까.

2014년 4월 16일 한국은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라는 거대한 배가 침몰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는 불가항력적 자연재해로 일어난 사고가 아니다. 총체적 부실, 총체적 죄악이 만들어낸 악마적 사고였다. 그런 의미에서 철저한 인재요, 고의(故意)였다는 말이다. 수학여행을 가던 순진무구한 청소년들이 총체적 죄악의 손에 의해 집단살상을 당해갈 때 국가나 관련 공기관이 거의 속수무책이었다는 데에 유가족 뿐 아니라 온 국민이 처절한 낭패감과 절망감에 빠진 것이다. ‘4•16’은 앞으로 달력에 새겨져야 한다. 달력에 기록된 수많은 기념일처럼. 그러나 비애와 애도, 그리고 반성과 회개의 날로 기록되어야 한다. 고귀한 어린 생명들이 배와 함께 수장되어가는 광경을 미디어는 생중계했고, 빤히 바라만 봐야했던 이 땅의 모든 눈과 영혼은 참혹한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숨을 곳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는 ‘4•16’ 이후 철저하게 변해야 한다. 집단 수치심, 집단 죄책감, 집단 무기력증, 집단 우울에 빠진 국민적 질병을 어떻게 치유하고 회복해야 하는지, 그리고 격랑의 시대를 항해하는 대한민국호가 무책임한 삼류 선원들의 손에 의해 침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역할해야 하는지 철저하게 고뇌하고 반성해야 한다. ‘4•16 이후의 기독교’는 그 본질과 교회론에 또 하나의 장(章)을 첨부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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