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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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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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2.1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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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찬 목사 (백석신학교 학장)

칼은 좋은 일에 쓰이기도 하지만 나쁜 일에 쓰이기도 한다. ‘칼부림’이란 칼을 들고 싸움할 때 쓰는 말이다. ‘칼날을 간다’는 말은 복수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마음상태를 말한다. ‘칼을 쓴다’는 말은 칼로 사람을 죽일 때 하는 말이다.

반면에 ‘사랑’은 죽을 사람도 용서하고 살릴 때 쓰는 말이다. 그래서 성경에도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라고 하였다.

그러나 북한 김정은은 이번에 사랑이 아닌, 칼을 썼다. 장성택을 처형함으로써 자기의 고모부일지라도 자기 체제에 도전하면 잔인하게 처형된다는 반인륜적 패륜행위를 저질렀다. 심지어는 그에게 그의 경제 실책, 정치불안 등 모든 잘못을 덮어 씌워 기관단총으로 공개처형했다.

세계인들은 김정은을 난폭하고 가장 잔인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는 이미 국제적으로 지도자의 이미지의 리더십을 상실했고, 장성택의 피를 통해 국민에 대한 사랑의 마음도 저버렸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한 살상행위를 한 러시아의 스탈린, 독일의 히틀러, 이란의 사담후세인, 우간다의 이디아민등 모두가 칼을 쓰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성경에서도 잔인하기로 이름 난, 동생을 죽인 가인, 2살 아래 사내아이를 다 죽인 헤롯왕 등 극악무도했던 자들과 왕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로 인생을 마감했다. 잔혹한 살상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그의 왕권의 몰락도 시작되었다.

베드로가 칼을 빼어 예수님을 붙잡는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쳐 떨어뜨렸다. 그를 본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26:52)하셨다. 여기서 ‘칼을 가지는 자’라는 말은 칼을 쓰는 자로 번역할 수 있다. 곧 칼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자는 다 망한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다’라는 말은 예외가 없다. 어떤 사람이라도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지 않을 자가 없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따르는 무리들과 작전상 칼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진리를 아시는 예수님은 칼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사랑을 쓰셨다. 칼은 사람을 죽이나 사랑은 사람을 살린다. 칼은 상대를 헤치지만 사랑은 상대를 감싼다. 칼이 사랑보다 강한 것 같아도 사랑의 힘이 칼의 힘보다 강하다. 칼을 든 자 앞에는 무력 때문에 복종한다. 그러나 사랑 앞에는 자기목숨을 걸고 충성한다. 칼을 쓰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사랑을 쓰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칼을 쓰는 곳은 하나님나라가 아니다. 사랑이 있는 곳이 하나님 나라다.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사랑의 힘은 칼보다 강하여 반드시 이기고, 복음의 나라로 통일 시킬 것이다. 사랑이 칼을 이긴다는 것이 복음의 진리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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