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태화의 문화칼럼] 래디컬, 래디컬해져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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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의 문화칼럼] 래디컬, 래디컬해져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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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0.0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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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의 종횡무진 문화읽기 (12)

일반적으로 래디컬(radical)을 생각하면 급진, 과격에서부터 시작해 나중에는 파괴, 폭력적이라는 의미로 확대된다. 래디컬 집단이라는 말은 앞뒤 좌우 가리지 않고 돌격하는 무식한 자들을 지칭하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

그래서 ‘래디컬’이란 단어는 국회에서 의자를 집어 던지고 난투극을 벌이는 의원님들을 연상시키거나, 아랍권에서 종종 출몰하는 자살 폭탄테러단을 상상케 하기도 한다. 그러나 래디컬은 자세히 살펴보면 ‘근본으로 돌아가다’란 뜻이 있다.

현재 사회와 교회를 놓고 볼 때, 누가 누구를 염려하고 있는가? 원래 거룩한 집단인 교회가 세속 집단인 사회를 걱정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사회가 교회를 염려한다고 한다. 어불성설이다. 죄로 물든 사회가 의인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걱정한다니, 성립될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몇몇 사례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이 없지 않다.

작년 어느 교단 총회에서는 한 총대가 가스총을 발사하여 난동을 벌였고, 총회장 선거에 돈이 오가는 진풍경도 벌어졌다고 한다. 올해는 부디 모든 교단들이 깨끗하고 질서있는 총회를 마쳤을 것이라 본다. 그래야 교회가 사회를 염려할 위상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래디컬해야 한다. 본질로 돌아가야 한단 뜻이다. 성경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인본주의 신학으로 물든 성경 해석서들 말고, 성경 그 자체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본 회퍼(Bon Hoeffer)는 현대 교회, 기독교인들이 값싼 은혜에 취해 있어 문제라고 지적한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고귀한 보혈을 값싸게 치부해 벌어진 상황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죄악의 권세를 물리치고,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피를 흘리셨다. 십자가를 지셨다. 그런데 그 값진 은혜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 진정한 제자도로 돌아가야 한다. 나의 십자가를 버리고,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 예수를 따를 때 진정한 제자가 된다. 그럴 때 교인은 성도가 된다. 주님이 낮아지시고, 백성들의 발을 씻기신 모습처럼 오늘의 교인들이 주님을 따라 간다면 사회는 교회로 돌아올 것이다. 래디컬해지자, 예수님처럼 래디컬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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