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시기에 부르심의 길로 나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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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시기에 부르심의 길로 나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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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8.27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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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하라, 기도하라, 사고하라 그리고 일하라 - 로크마커의 개혁주의 미학 (1) - 안용준 목사(목원대 겸임교수)

고통의 시기에 부르심의 길로 나아가다

고통의 시기에는 한숨이 나오기 마련이다. 누구든 삶 속에 점점 깊숙이 파고드는 고통을 받을 때마다 분노와 좌절감을 경험할 수 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 때문에 생겨난 적대감을 억누르지 못하고 허공에 소리치거나 원망을 쏟아낼 수도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받고 있을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고난이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고난 중에도 신뢰와 평안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카이퍼(Kuyper)의 영향으로 예술 또는 미술사를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새로이 조명한 한스 로크마커(Hans Rookmaaker: 1922-1977)가 바로 이런 처지에 있었다. 그는 나치점령 아래 놓인 고국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의 독방에 수용되었을 때 회심을 경험한 것이다. 그곳에서 성경을 읽고 참된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한 것이다. 사람의 생사(生死)를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고통을 견디며 낙심하지 않을 수 있었다.

사실 그는 1922년 남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인도네시아의 네덜란드 총독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한마디로 전형적인 외교관 집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을 이어 로크마커가 외교관이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이 심화되자, 그는 네덜란드에 돌아와 기독교계통의 공업 고등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이 학교에서 기독교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절망적인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 위로의 하나님이 독방으로 찾아 오신 것이다. 이것도 잠시인가. 3개월의 투옥생활 후엔 악명 높은 독일의 나치 수용소에 보내진다. 상황은 더욱 힘들어 지는듯했다. 하지만 어둠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수록 빛과 생명의 은혜는 더욱 큰 법이다. 극심한 고통에 할 말을 잃은 채 괴로워하고 있을 때 개혁주의 사상의 거장을 만나게 될 줄이야 예측이나 했겠는가.

▲ 로크마커 박사

그는 네덜란드의 기독교철학자 헤르만 도여베르트(Herman Dooyeweerd)의 제자인 메케스(J. Mekkes)를 만나게 된 것이다. 수용소에서 메케스로부터 도여베르트의 철학을 공부하면서 그의 사상을 받아들인다. 도여베르트는 기독교를 인간의 존재와 삶의 최고의 동기로 여겼던 사람이었다. 결국 로크마커는 그의 사상을 미술사와 미술비평의 원리에 적용하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또한 토론을 계속하는 가운데 서양철학의 뿌리에 기독교적 결단이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칸트가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은 순수이성도 자세히 관찰하면 보편타당한 원리가 아니라, 일종의 믿음(Belief)에서 나온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로크마커는 고난의 현장에서 자신의 소명을 깨닫게 된다.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정당하면서도 품위 있는 소명을 수행할 수 있는 지적 자각이 열린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어렵고도 도전적인 일이지만 예술의 청지기적 소명을 실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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