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총회 둘러싼 갈등에 정부도 지쳤다
상태바
WCC 총회 둘러싼 갈등에 정부도 지쳤다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3.08.01 11: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CC 총회까지 3개월, '임시봉합' 나선 준비위

분열·갈등 에큐정신 위배 …‘치유와 화해’의 마무리 필요

“교회끼리 왜 싸우나” 정부조차 적극 지원에 난색 표명
WCC 총회 ‘이벤트’라는 생각 버리고 내실에 집중할 때

세계 기독교인의 축제인 WCC 총회. 아시아 대륙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WCC 총회는 특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이 개최지라는 점에서 세계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는 10월 30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막하는 WCC 제10차 총회까지 불과 3개월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한국 교회는 해외 손님을 맞이할 준비에 나서야 하는 한편, 지역교회까지 참여하는 WCC 총회와 에큐메니칼운동의 확산을 위해 마음을 모아야 한다. 단순히 ‘행사’로써 총회를 치루는 것을 넘어 ‘운동’으로써 WCC 총회 이후 한국 교회의 미래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9년 8월 총회 개최지로 한국이 확정된 후 4년의 시간, 한국 교회는 싸움에만 몰두하는 인상을 남겼다.

지난 22일 한국준비위원회가 마련한 제6차 기도회에서 ‘화합’과 ‘전진’에 대한 메시지들이 전해졌지만 그 이면에는 외압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임시 봉합’의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 김영주 총무 복귀, 봉합인가

22일 열린 6차 기도회에는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에큐메니칼 기구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영주 총무가 참석했다. 지난 1월13일 명성교회에서 발표한 한기총과의 선언문 논란이 일어난 후 WCC총회한국준비위(이하 KHC) 집행위원장직 사의를 표명한 김영주 총무는 거의 5개월 만에 공식 석상에 함께 했다.

예배 후 재정관리에 대해 교회협과 KHC가 협약을 체결하는 자리에 나선 김 총무는 “WCC 총회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교회협과 가맹교단에 매우 큰 책임이 있다”며 “교회협 총무로서 중요한 관점에 집중하지 못하고 공백기를 둔 것에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다.

이날 체결한 재정관리 협약은 임의조직인 KHC를 대신해 교회협의 유지재단 법인 통장을 사용하는 이번 행사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책임 소재를 정하는 내용이었다. 실질적인 사업과 집행을 KHC가 진행하는 상황에서 추후 일어날 재정누수에 대한 책임을 교회협이 일방적으로 떠안을 수 없다는 부담감이 작용했다. 따라서 합의문은 교회협이 KHC에재정 집행의 권한을 주고 더불어 정산과 청산의 책임도 함께 감당한다는 약속을 담고 있다.

사실 이같은 절차는 김영주 총무 복귀를 위한 하나의 이벤트에 불과했다. “부속 합의가 필요하다”는 김 총무의 말은 자신의 복귀가 단순히 한 사람이 들고 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을 포함한 에큐메니칼 진영의 교단 실무자들이 함께 복귀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6차 기도회 현장에 처음으로 교단 총무들이 참석해 준비상황을 보고한 것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예장 통합 이홍정 사무총장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WCC 총회의 토대가 되는 교단의 입장을 밝히는 시간을 마련한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 목사의 말처럼 WCC 총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과 책임은 회원교단에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KHC는 오순절과 복음주의권에 집착한 나머지 회원교단의 주도적인 참여를 배제하는 우를 범했다. WCC 총회가 단순히 며칠간 회의만 하고 끝나는 ‘이벤트’라면 연합적 구성과 그에 따른 순서자 확정이 중요한 과제가 되겠지만 WCC 총회는 세계 교회가 앞으로 나아갈 7년을 결정하는 의제 중심의 ‘무브먼트(movement)'라는 점에서 회원교단의 책임과 참여, 그리고 역할 수행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총회를 100일 앞두고 더 이상의 분열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서 WCC를 중심으로 한 에큐진영은 ‘봉합’을 선택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변수가 남아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 ‘봉합’에는 외부 시선 의식했다

김영주 총무를 비롯한 에큐메니칼 진영의 복귀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석연치 않은 것은 ‘대화합’의 희열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22일 종교교회에서 열린 행사는 5년 만에 새 감독회장을 선출하고 정상화의 길에 들어선 감리교가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을 약속한 것을 제외하고는 ‘물과 기름’처럼 100여 명의 상임위원들이 모두 겉도는 느낌이었다. 성공개최에 대한 ‘파이팅’보다 성공하려면 이렇게라도 해야 하는 억지스러운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그 배경에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22일 행사에 사흘 앞서 기독교계 지도자들은 새정부 취임 후 처음으로 청와대 오찬을 가졌다.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한 자리에서 WCC에 대한 대화도 오갔다.

교계 원로이자 전 아시아교회협의회 총무를 지낸 박상증 목사는 “나는 갈등과 대립이 치열하던 시대를 보냈지만 지난 19일 청와대 행사에 참여하면서 소위 진보와 소위 보수가 화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고 언급했다. WCC 반대 전면에 나섰던 홍재철 한기총 대표회장과 KHC 대표대회장인 김삼환 목사가 참석했고, 보수와 진보 인사 20여 명이 뒤섞여 참석한 청와대 오찬은 특별한 잡음 없이 화합하는 교계의 모습을 보여준 시간으로 전해진다. 박 목사의 언급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이날 분위기 역시 일종의 ‘봉합’이었다. 새정부 이후 대통령 면담을 수차례 신청한 교계는 ‘분열’의 이미지 때문에 쉽게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다. 정부로서도 보수와 진보로 나눠진 교계에서 누구를 만나야할지 고민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당신들끼리 계속 싸운다면 교계에서 열리는 행사를 적극 지원할 이유가 없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정부에는 ‘한국 교회’하면 ‘대립’과 ‘분열’이라는 인상이 각인되어 있었던 것. 진보와 보수의 대립 뿐 아니라 WCC 총회 준비과정에서까지 잡음이 일어나면서 한 목소리를 내는 불교와 천주교에 비해 기독교를 상대하는 것이 몹시 불편하다는 뜻이 전달된 것이다.

결국 이러한 메시지를 접한 교계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봉합’에 나섰고, 어렵게 성사된 청와대 오찬에서는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하며 서로에 대한 비방을 자제했다.

WCC 총회를 주관하는 그룹 역시 소위 대형 교회와 에큐진영의 화합과 연대가 시급했다. 한기총도 WCC 반대의 이미지가 굳어질 경우, 내년에 열리는 WEA 총회 개최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한 마디로 신앙공동체 안에서 대화와 기도로 화합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눈치를 살피며 상황을 억지 ‘포장’하는데 급급했다. 이번 봉합이 불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보고 배울 것을 남겨야

10월 열리는 WCC 총회는 한국 교회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기성 증경총회장인 이정익 목사는 “부교역자들과 부산으로 내려가 WCC 총회를 직접 볼 것”이라며 “그래야 저들이 세계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에큐진영이 그토록 자부하는 WCC 총회를 직접 보고 체험하겠다는 것이다. 즉, 반세기 가까이 한국 교회를 분열로 몰아넣고 신학적 대립을 불러온 WCC를직접 봄으로써 그간의 오해를 풀고 더 큰 선교의 과제를 배우겠다는 뜻이다. WCC 총회에 우호적인 복음주의권은 이번 총회를 통해 WCC와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무언가 하나라도 건질 것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깔려 있다. 교단의 반대를 딛고 어렵게 참여한 복음주의권 지지자들을 위해서도 WCC 총회 준비는 보다 성숙하게 진행돼야 한다.

세계 교회 역시 한국 교회를 주목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성장한 한국 교회가 얼마나 깊은 신앙과 연대감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증을 안고 들어온다. 또 종교간 평화를 이루는 한국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독교 내부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한국 교회는 WCC 총회 후 세계 교회 앞에 설 발판을 잃게 된다.

정부를 비롯한 타종교에서도 기독교계가 과연 국제행사를 잘 감당해낼 것인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싸우는 기독교가 아닌 화합하는 종교로 기독교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결국 한국 교회가 WCC 총회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번 총회 주제로 돌아가는 것.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라는 주제는 많은 신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장 통합 이홍정 사무총장은 “정의와 평화에 이르는 과정은 치유와 화해”라며 “에큐메니칼운동이 WCC 총회 개최와 더불어 치유와 화해의 길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남은 3개월, WCC 총회 준비에 참여하는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은  '치유와 화해' 그 이상은 없을 듯 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