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삶의 ‘총체적 관점’에서의 사역과 섬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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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삶의 ‘총체적 관점’에서의 사역과 섬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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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4.16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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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열 박사 (총신대 조직신학)

2011년 말 기준으로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수는 총 140만 명 전체 인구 중 2.75%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2000년도부터 꾸준히 강조되어온 다문화가정 문제는 2007년 급증하며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영혼구원과 섬김 두 가지 면에서도 꼭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 개혁신학회가 최근 ‘개혁신학에서 바라본 다문화 가정의 이해’를 주제로 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발표된 내용 중 일부를 요약해 실었다. <편집자 주>

오늘날 세계는 하나의 마을로 변화하고 있다.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이 세계화의 물결이 이제는 전 세계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오고 있고 특히 1992년 이주노동자 도입을 위한 법 제정이 이뤄지면서 중국, 동남아시아 등 여러 나라로부터 외국인이 대거 유입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한국을 찾은 이들의 현실은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다.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을 깊이 간직해온 우리 사회에서 그들은 쉽게 배척당하고 소외감을 느끼며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인식에서도 여전히 이런 배타적인 모습은 극복되지 못한 채 남아있다. 복음의 정신으로 소화해내야 할 과제인 셈이다. 다문화가정을 위한 사역을 논의함에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외롭고 힘든 신자에게 다가감에서 그들의 인권문제나 경제적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영적 부분을 돕지 못하거나 혹은 그 반대로 영혼 구원 문제에만 초점을 맞춰 실제적인 사회ㆍ경제적 어려움을 돌봐주지 못하는 방식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균형 있게 반영하지 못한점을 들 수 있다. 여기서 필요한 개념이라면 바로 총체적인 복음의 관점 확립일 것이다. 성경이 제시하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총체적 관심을 이해한다면 외국인을 대함에 있어 영혼구원과 섬김사역도 같은 관점에서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은 복음전도를 통한 영혼구원의 사명과 나눔과 섬김을 통한 사랑실천의 사명 그리고 다문화 가정을 위한 총체적 복음사역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다. 두 개로 나뉜 총체적 복음 사역은 다문화 가정을 위한 사역으로 신론과 기독론 안에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과 예수님의 보편적 사랑으로 해석돼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혼구원을 위해 복음선포에 참여할 때 그 사역의 목표는 다문화가정의 영혼을 주께로 인도해 회심하는 것이 목표가 될 것이다.

또한 사랑 섬김의 일에 참여할 때 사역자의 의도는 그들의 삶을 사랑으로 돌보고 생활에 도움을 주며 육체적 혹은 경제적 삶 속에 회복을 가져오게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역 속에 고려할 점은 영혼 구원을 위한 복음 전도와 생활 개선을 위한 사랑실천 모두 필요한 사역이지만 두 가지 사역을 혼동하거나 어느 한 사역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역이 서로 다른 의도와 목표를 갖고 있다는 해석은 두 사역이 분리된 사역으로 이해될 위험성이 있다. 영혼구제 사역과 섬김사역은 각각 그 자체로 사역의 정당성이 있지만 동시에 둘은 모두 하나님 나라와 그 영광을 위한 사역이라는 궁극적 목표 아래 진행되고 있어 서로 유기적 관계라 풀이할 수 있다.

특히 우선성 측면에서는 사역 자체만으로는 그들을 영생으로 인도할 수 없기 때문에 성경에 의하면 복음전도를 통한 영혼 구원의 우선성을 말하고 있다. 또한 논리적으로 먼저 복음을 받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참된 섬김과 사랑 사역 실천으로 이어진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변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문화 가정을 위한 교회와 신자 봉사사역의 출발은 복음 전도를 통한 변화와 제자훈련을 통해 사전에 준비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위해 모든 신자와 교회가 일률적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모든 사역에 임할 수는 없다. 두 사역의 중요성을 함께 인식하고 있다 해도 실질적으로 신자는 각자 받은 소명과 달란트가 달라서 이에 따라 사역의 우선순위가 결정될 수도 있다.

물론 자기 사역의 중요성만 강조하고 다른 사역을 무시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할 수 없으므로 주어진 자기 은사에 집중해야 한다는 면에서 우선성은 융통성 있게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사역을 위한 재원의 한계나 시간적 한계까지 고려한다면 적절한 사역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는 배려는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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