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기대를 뛰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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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기대를 뛰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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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3.28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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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직 교수의 십계명에서 찾아낸 그리스도인의 삶 (32)

                                            하나님의 통치방법

▲ 백석대 조직신학
이스라엘 백성은 마라에서 쓴 물을 만나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인들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그들을 홍해에서 이집트 군대로부터 건져주셨다. 그들은 홍해에서 3일 길을 걸어 마라에 이르렀을 때, 멀리 보이는 종려나무를 보고 기뻐했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또 다른 기적과 배려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크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대로 언제나 움직이시는 분은 아니다.

이집트에서의 삶은 예측 가능한 삶이었다. 나일 강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으며, 그들은 매년 그들이 기대하는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었다. 이집트는 모든 것이 보장되는 사회처럼 보였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건져내신 이스라엘 백성은 또 다른 방식의 예측 가능한 삶을 기대했을지 모른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즉각 개입하셔서 그들의 문제를 풀어주실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것이 홍해 옆에서 미리암의 지휘에 따라 그들이 합창한 찬양의 주제였다.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도록 다스리시도다”(출15:18).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방식은 그들이 기대한 통치방식과 달랐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시는 목자이시기에 하나님의 통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로운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말로 좋은 것인지를 판단하는 주체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참으로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 한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대한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절망하기도 하고 하나님께 원망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3일 광야 길을 걸어간 결과가 마라의 쓴 물일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우리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럴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동방의 의인이라는 욥마저도 그러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의인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에게 닥친 재난은 마라의 쓴 물 이상이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갈 때 만나는 마라의 쓴 물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신학교에 입학했는데 등록금이 없어 고통 받을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하고 정직하게 시험을 쳤는데 정작 좋은 성적은 컨닝한 동료에게 돌아갈 때도 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세상 방식대로 살아가는 친구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나보다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수술해준 환자가 나를 원망하고 의료소송을 걸어올 때도 있다.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데도 예기치 않게 찾아온 우울증 때문에 신체적으로나 영적으로 깊은 침체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학교생활에서 왕따 당하는 친구를 변호하다가 도리어 왕따가 될 때도 있다.

욥의 첫 반응은 “하나님,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였다. 우리의 반응도 많은 경우 그러하다. 하지만 욥이 고백했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지혜를 다 파악할 수 없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선을 베푸실 수 있다. 마라의 쓴 물은 이스라엘 백성의 쓴 마음을 확인하고 드러냄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치유가 가능하게 한 은혜의 수단이었다.

작년 가을 개혁주의생명신학회에서 한 목사님께서 소중한 고백을 하셨다. 대형교회 부목사로 있을 때 그분은 자신이 설교와 목회를 잘 하고 무엇보다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개척교회를 시작하면서 광야 생활을 경험해보니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광야 생활은 그분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기회를 그분에게 주었다. 그러하기에 광야 같은 개척교회 목회는 그분에게는 은혜였다.

그러나 3일 동안 뜨거운 광야 길을 걸어온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게 고백할 만큼의 영적 훈련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는 방식이 그들이 기대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함으로써 하나님을 제한하고자 했다. 또한 일이 그들의 기대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을 원망했다.

지금껏 그들을 기적과 섭리로 이끌어 오신 하나님을 그들이 참으로 신뢰했다면 그들은 마라의 쓴 물 앞에서도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드렸을 것이다. 우리는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찬양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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