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과 현대인
상태바
부활과 현대인
  • 운영자
  • 승인 2013.03.27 02: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정익 목사 / 신촌성결교회

오늘 우리는 또 다시 부활절을 맞이한다. 부활절은 고난주간의 열매이고 기독교의 꽃이기도 하다. 무신론자에게 부활은 의미가 없을 것이나 부활은 인류 최대의 희망이자 비젼이고 소망이며 인류에게 주어진 최대의 선물이다. 부활은 초유의 사건인지라 당시 제자들도 이해하지 못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예수님은 부활하셨건만 제자들은 그렇게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제자들의 무지와 영적 미숙함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탓하지도 않으셨다. 부활은 그만큼 전대미문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마냥 기뻐만 하고 있을 처지가 못 되었다. 그 보다 나도 잡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십자가형은 처절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부활 후에도 한동안 다락방에 숨어 지냈다. 그리고 갈릴리로 갔지만 낙향 후에도 그들은 한동안 기쁨을 잃고 지냈다. 충격도 컸지만 부활의 의미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또 제자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활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실의 삶이 비중이 더 컸다. 제자들에게는 오늘 내일 살아갈 문제가 더 시급했다. 그래서 3년 동안 비워둔 그물을 손질해서 바다로 나아갔다. 부활 예수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니 제자들에게 환희와 감격과 부활의 힘이 주어졌겠는가. 오로지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충격 속에 헤매고 있었고 오늘 어떻게 살까 하는 염려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오늘 현대인들의 부활 불신이유와 흡사하다. 오늘 현대인들은 보이지 않는 부활 보다는 오늘 눈에 보이는 현실의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온다. 당장 재정의 위기가 더 크다. 당장 눈앞에 놓여있는 진로의 문제가 부활을 가로막는다. 부활절이 다가오면 감격과 기쁨, 소망보다는 부활절 감사헌금 낼 걱정이 더 크다.

오늘 신앙인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어제까지 함께 했던 예수의 능력이나 함께하심 그리고 도우심 등은 오늘 머릿속에는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날도 그물을 들고 바다로 나아갔던 것이다. 경험을 되살려 이제부터 스스로 살아갈 길을 연습했다.

이것은 좀 배운 사람들이 더 심하다. 누굴 믿지 못한다. 그러기에 예수께 달려가는 발걸음도 없다. 예수께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도 없다. 그것은 영적으로 미성숙자나 하는 일이고 유치한 사람들이나 하는 태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제자들은 그 마음 때문에 그 밤도 헤맬 수밖에 없었다. 그 마음으로 그물을 던졌기 때문에 고기가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날 예수께서 오셔서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보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다시 순종하여 그물을 던졌을 때 빈 그물은 채워졌다. 그날 빈 그물만 채워진 것이 아니고 텅 빈 제자들 자신의 영적 공간도 채워졌다. 그리고 그들은 비로소 진정으로 예수 부활을 체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 현대인들은 영적 수준이 미약하다. 매사 지성적으로 믿고 이론적으로 믿음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오늘 현대인들에게 부활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제자들이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한 번 더 던질 때 비로소 빈 그물이 채워지는 능력을 통하여 눈이 뜨였고, 그 뜨여진 눈으로 부활의 주님을 발견하게 될 때 비로소 진정한 제자가 되고 신앙인이 되었던 것이다.

부활은 오늘 현대인들이 체험하여야 할 진리이다. 은혜이다. 삶의 전환점이다. 소망의 근거이다. 비젼의 동기이기도 하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 부활의 새 아침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