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아픔, 피폭자와 함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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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아픔, 피폭자와 함께해주세요”
  • 이덕형 기자
  • 승인 2013.03.0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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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원폭2세환우회, 관련법 제정 및 지역별 관심 촉구

“그때는 일제시대 한국에서 살 수 없어. 생계유지를 위해 일본으로 밀항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피폭되며 그곳에서의 생활도 단숨에 한줌의 재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빈손으로 돌아올 때는 가난과 질병 이외에는 남은 게 없었습니다.”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 한정순 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2차 세계대전 일본에서 피폭된 한인의 가족과 그 후손에게 남은 것은 가난과 이조차도 떳떳이 말할 수 없는 아픔만이 지난 68년간 함께해왔다고 고백했다.

‘한국인원폭피해자 지원 특별법 발의’를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 참석한 한정순 씨는 “저 역시 원폭피해자 2세로 대퇴부에 무혈증 괴사증이 있어 인공관절 수술을 계속해 받아왔다”고 말했다. 30대 초반부터 인공관절 수술을 4번 받아온 그는 인공관절이 마모되는 10년 주기로 수술을 받아왔고 이를 위한 경제적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고 전했다.

부모 모두 히로시마에서 피폭됐다고 말한 한 씨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2세와 3세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 씨는 자녀가 31세지만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원폭당사자를 포함해 피해 2세의 답답함은 여기에 있다. 피폭에 대한 인과관계는 유추할 수 있지만, 객관적인 자료가 없어 의료혜택 및 보상도 부족한 상황이다. 그는 “원폭피해자 가족으로선 실제 치료비가 없어 치료를 못 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다 보니 지금은 의료비 선지원 후 규명이 필요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직접 타격을 받은 일본의 경우 1957년 원폭의료법이 시행돼 건강수첩이 발급됨으로써 기본적인 무료치료가 시행됐다. 또한 1968년 특별조치법이 제정돼 각종 수당이 제도화된 상황. 이후 1994년 피폭 50주년을 맞이해 두 법을 포괄, 지원의 폭을 확대한 ‘피폭자 원호법’을 제정한 바 있다.

2012년 기준 피폭자를 위해 일본이 마련한 예산은 총 1조 7천170억여 원이다. 그는 국내 피폭자 중에는 일본 정부에서 발급하는 피폭자건강수첩이 있는 경우 일본 피폭전문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매달 30만 정도의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국내 피폭자는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내에는 경남 합천지방에는 합천복지회관이 설립돼 있다. 원폭피해자만 생활할 수 있는 이곳은 집에서 생활하기 힘든 고령의 주민 110여 명 정도가 이용하고 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피폭자 2천673명을 기준으로 지역별로 △부산 719명 △합천 626명 △중앙 616명 △대구ㆍ경북 469명 △경남 243명 등록했다고 전했다.

그는 전국 차원에서 실태조사 및 의료지원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아직 피폭생존자가 전국에 걸쳐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실태조사 및 관련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씨는 “지역 편중에 대해서는 합천의 경우 한국의 히로시마라 불리는 데, 이는 일제시대 생존을 위해 동네에서 단체로 일을 떠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교회 사회봉사단체의 참여에 대한 의견도 피력했다. 한정순 씨는 “한국교회희망봉사단(이사장:손인웅 목사) 같은 봉사단체가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며 “정부가 먼저 안아주고 보살펴줄 수 있게끔 돕는데 빛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교봉의 경우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노트북과 이동을 위한 차량으로 카니발을 전달한 바 있고, 지난해 7월에는 원폭피해자 관계자들을 초청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함께 수요집회를 개최했다.

그는 “기독교 단체를 포함해 시민단체의 따뜻한 손길이 너무 고맙다”며 “발의된 특별법안이 잘 통과되어 병원문턱을 낮춰 우리도 마음껏 진료받을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또한 “비록 선교라는 부분을 강조하지 않았지만 힘든 우리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온 것을 알 수 있었다”며 “여유가 생긴다면 봉사단체에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한 씨는 이날 연락을 통해 재차 한 가지 꼭 당부하고 싶다는 점을 밝혔다. 그는 “1945년 태평양 전쟁은 끝났지만 우리에게는 태어나는 날부터 전쟁이 다시 시작된다”며 “평생 이어가는 전쟁 속에 그래도 삶은 계속돼야 한다는 희망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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