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땀방울이 ‘어찌 고맙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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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땀방울이 ‘어찌 고맙지 아니한가’
  • 박순웅 목사
  • 승인 2012.11.1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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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곡과 과실의 소중함을 나누는 ‘추수 고마움 예배’

이른 곡식(감자, 옥수수, 우리 밀, 보리, 고추, 마늘 등)과 과일(토마토, 수박, 참외, 포도 등등)이 맥추 고마움이라면, 늦은 곡식(배추, 무, 햅쌀, 고구마, 땅콩 등)과 과일(사과, 배, 감 등)이 추수 고마움 예배라고 이야기를 한다. 분류한다면 이럴 수 있으나 그러나 어찌 이렇게 뚝 잘라서 분류 되어진 것만이 추수의 고마움이라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이야기했듯이, 쌀 한 톨에는 생명의 무게가 있고, 농부의 마음이 있으며, 쌀 한 톨에는 우주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열매로 되어 지기까지는 우리가 감지하거나, 알지 못하는 모든 것들이 서로서로의 유기적 도움으로 우리에게 온다는 것, 그것을 우리는 그분의 은총이라 한다. 이러한 은총의 경험을 너무나도 쉽게 혹은 느끼지 못하며 획 지나가는 절기 예배에 안타까움이 있다.

그 옛날 맥추, 추수의 고마움을 생각해 본다. 척박한 땅에서 맨 몸으로 흙을 일구며, 매일 매일 하루 종일 땀 흘려도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없었던 시대. 그 때는 하나하나에 진정한 고마움의 가치가 있었고 그래서 남는 것 없이 알뜰하게 소비했다. 그 때 그 시절을 똑 같이 함께 할 수는 없겠으나 마음을 회복했으면 한다.

너무나도 풍요롭기 때문일까? 혹은 너무나도 쉽게 재배해서 그럴까? 오늘날에는 당연시하고 쉽게 사라져 버리는 것을 보면 마음이 미어진다. 더군다나 한쪽의 나라는 남겨져서 버려지는 것을 다른 나라는 한 해의 양식으로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서는 더더욱 먹먹할 뿐이다. 작은 부분이라 할 수 있겠으나 먹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여긴다. 

안전하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만드는 농부들의 땀 흘림에 있어서 추수의 고마움을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추수의 알곡은 공장에서 순식간에 찍어내듯이 똑같이 균일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긴 시간이 필요하고 보듬어야할 뿐 아니라, 그렇게 최선을 다해도 하늘의 도움이 없이는 하나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일본 규슈 후쿠오카의 농촌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농촌 지도 소장을 지내고 계단식 농사를 짓는 마을에 찾아와 유기 농사를  짓는 우네 씨를 만났다. 할 수 있으면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왜 그렇게 하냐고 물었더니, “기계로 빠르게 농사를 지으면 내가 농사짓는 논과 밭에서 함께 공생하는 것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일일이 수작업으로 천천히 하다 보면 내 논과 밭에 함께 살아가는 벌레와 곤충들을 볼 수 있다”고 답한다.

결국 소중한 것들과 그것들을 통해서 나락 한 알이 우리의 입과 몸으로까지 올 수 있음을 알게 될 때 참 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느 날 우네 씨가 점심을 먹으러 식당엘 갔는데, 밥이 수북하게 있는 밥 공기그릇을 보면서 든 생각이 이 한 그릇에 담겨진 쌀은 몇 알이나 될까? 궁금해서 밥알을 세기 시작했고 3,500알임을 알게 되었다. 이듬해 농사지어서 3,500알 정도의 밥 한 공기그릇이 되려면 벼가 몇 포기 정도 되어야 하는지 알아보니 3-4포기 정도, 다시 이듬 해 벼 3-4포기 주위에는 어떤 벌레와 곤충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더니, 올챙이 40여 마리가 주위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더란 것이다.

박순웅 목사 / 동면교회 동면교회 박순웅 목사는 농사를 지으며 하나님의 창조세계 보존에 힘쓰고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농도생협 이사장으로 일하면서 도시와 농촌교회를 잇는 가교역할도 감당하고 있다.
결국 우네 씨는 도시 소비자들에게 반복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당신이 밥 한 그릇을 먹는다는 것은 올챙이 40여 마리와 함께 교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표현을 그렇게 한 것일 뿐 어찌 올챙이 뿐이랴, 농부의 손길 햇볕과 습도, 구름과 바람, 비 등등 수많은 것들의 도움으로 나락 한 알이 나온 다는 것을 본다면, 추수 고마움을 단순하게 넘길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고마움을 알게 하기 위해서 일본의 우네 씨는 도시 소비자들을 수시로 농촌에 방문하게 해 체험하게 하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두 해 전부터 부천에 있는 모 교회에 벼를 심었다. 플라스틱 그릇에 흙과 퇴비를 넣은 뒤 물을 채우고 거기에 벼를 심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벼가 자랐고 파란 벼들을 보면서 교회의 아이들이 신기해 했고 어른들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했다.

벼 이삭이 나올 때 아이들이 목사님께 물었다. “이게 뭐예요.” “응, 이건 말이다 벼라는 것이고 여기에 맺힌 것들을 볍씨라고 하며 잘 말려서 껍질을 까내면 그것이 바로 쌀이 된다”고 이야기 했더니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배워 가는 아이들과 향수에 있었던 어르신 교우들에게 성만찬 떡을 만들어 함께했다고 한다.

추수 고마움의 예배 때에는 벼 이삭이 있는 볕 단을 몇 단 묶어 교회 장식을 하고 허수아비까지 함께 한다. 모두 몇 개월 동안 자라난 벼를 보며 고마움을 함께 느낀다. 추수의 고마움을 경험한 이 교회, 작년에는 더 넓게 농사를 지었다. 그렇게 농촌과 도시는 서로서로 추수의 고마움을 배워간다. 

추수의 고마움을 일 년에 한, 두 번만으로 드리기 보다는 일상의 교회 공동식사로부터 추수의 고마움을 느껴보고자 작년부터 추수 고마움의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바로 안전하고 바른 건강한 먹을거리의 공동식사를 소개하는 것이다. 7-8년 전부터 하나씩 준비해온 교회가 있다.

처음에는 유기농 쌀을 재배하는 농촌 교회의 쌀로 시작했다. 부수적인 재료도 역시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바꾸어 갔더니 이제는 밥 먹는 공동식사가 그야말로 성찬, 애찬이 된 것이다. 매주 가장 안전하고 건강하게 재배된 것으로 추수의 진정한 고마움이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이 교회는 500여 명이 모이는 교회인데 이러한 공동식사의 성찬을 나누는 인원을 무려 350-400여 명이라 한다. 밥이 맛있다고 한다. 아이들까지 데리고 와서 함께 한다. 시간이 지나 이러한 거룩한 밥상을 함께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젊은 사람들도 시간을 내어서 봉사까지 한다.

결국 추수의 고마움을 알고 거룩한 성찬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몸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하다. 내년 한 해 이 일을 위해서 또 다른 교회를 향하여 발로 뛸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디 갈 것이고 농사꾼이 농사를 짓듯 그렇게 한 교회 한 교회 추수해볼 작정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콩 자급률은 5% 정도이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모두 수입되는 것이다. 두해 전부터 이러다가는 큰일이라는 생각에 농촌 교회와 도시 교회 더불어 사회적 기업과 함께 하려는 공동식사를 마련했다. 농촌 교회는 두부 만드는 콩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렇게 10여개 교회가 추수한 콩은 전통 두부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 강화의 일벗교회로 모두 보내지는 것이다. 만들어진 두부는 도시 교회의 공동식사용으로 한 달에 한 번 두부 먹는 날의 공동식사용으로 함께하는 것이다. 도시교회는 두부를 공동식사로 함께하는 동시에 두부의 원료인 콩 생산자급률 높이는 것을 선교하는 것이다. 농촌교회는 콩 자급률을 높여 좋고, 도시교회는 안전한 먹을거리의 추수 나눔을 통해 바른 선교를 해서 좋은 것이다. 이러한 것이 한두 번 추수 고마움의 예배를 하는 의미보다 더 큰 실제적 추수의 고마움일 것이다. 이러한 것을 가장 절정인 추수의 고마움 절기에 함께 해온 일들을 나눌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번 주가 ‘추수 고마움’의 절기이다. 간편해져 가다보니 소중한 것들을 잊고 있다.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추수되어진 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함께하는 공동식사의 성찬이 되길 빈다. 아울러 간간히 일상의 농촌체험을 통해 어려움과 함께 나누는 일들을 통해 추수의 절기에 더더욱 고마움을 예배로 함께 하길 또 한 번 빌어본다.     

박순웅 목사 / 동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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