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불편 운동을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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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불편 운동을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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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1.0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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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식 목사 (기윤실 정직윤리운동본부장)

교회의 교회됨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르게 감당할 때 교회의 교회됨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위하여 우리가 감수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본질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손해 보아야 할 것이 많습니다.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접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 됨의 현장은 자발적 불편을 감수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려거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이 땅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왔다고 하셨습니다. 섬김을 받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섬기는 것은 어렵습니다. 섬김을 받을 수 있음에도 섬김의 자리에 서신 것이 바로 자발적 불편입니다. 얼마든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지만 스스로 포기하고 나눔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발적 불편은 자발적 가난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고지론, 저지론, 미답지론, 청부론, 청빈론이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자발적 불편과 자발적 가난의 삶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지만 스스로 누림을 포기하고 함께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러한 그리스도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편을 기꺼이 감수 할 수 있는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밝아집니다. 물론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입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합니다. 돈과 권력과 명예를 사랑하는 자리에서 내려와서 이름도 없이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자발적 불편을 살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무기력하고 궁상맞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 불편의 삶은 이웃과 공동체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웃과 공동체가 없이 자신이 존재 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함께 공유하는 삶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자발적 불편은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삶이 아니라 이웃 즉 타자를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리스도인들의 자발적 불편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우리 시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위기의 시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위기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매우 실제적인 위기가 있습니다. 바로 ‘전기’입니다. 이상 기온으로 인하여 전기의 사용량은 한계치를 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전기를 감당하려면 원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원전은 일본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우리 스스로 전기 사용을 줄이는 것입니다.

더운 여름, 추운 겨울에 전기를 줄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불편의 자리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창조계를 보존하고, 교회를 살리며 그리스도인 됨의 모습을 되찾는 일입니다.

물론 자발적 불편 운동은 여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다만 그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교회의 무너진 터를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세상은 자발적으로 불편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부터 우리가 서있는 이 자리에서 자발적 불편을 시작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교회를 바르게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는 일에 함께 동역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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