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들 성령강림 이후 그리스도교 이방선교의 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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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들 성령강림 이후 그리스도교 이방선교의 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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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8.0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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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하 교수의 이야기 교회사- (3)

                                          유대교와의 관계

▲ 백석대 역사신학
앞에서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태에서 나왔음을 설명했다. 예수께서 나실 때 유대는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기원전 63년 예루살렘을 점령한 로마제국은 원로원의 승인을 얻어 기원전 40년경 팔레스틴 지역을 비유대인이었던 이두메 사람 (대)헤롯을 세워 다스리게 했었다.

내부적으로 기원전 4년 대 헤롯이 죽은 후 그의 영토는 4분할되어 통치되었고 그 중 하나인 갈릴리와 베레아는 영주 헤롯 안티파스에 의하여 통치되었다. 또한 예수께서 탄생 후 얼마되지 않은 기원 후 6년 로마의 총독에 의하여 지배되는 유대지방의 총독지역이 형성되었다.

예수님 당시 사용되었던 예루살렘 성전은 기원전 헤롯대왕 때 짓기 시작하여 기원 후 60여년까지 지어졌다.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이 찾으시고 사도들이 오랫동안 신앙의 중심지로 사용하였다.

바벨론 70년 포로 후 유대인들은 모두가 팔레스틴 땅으로 돌아왔던 것은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시리아에 의한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과 바벨론에 의한 남왕국 유다의 멸망으로 이집트, 시리아,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바벨론, 메대 등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바벨론 포로기 후에도 많은 유대인들은 귀향하지 아니하고 살던 곳에서 디아스포라를 형성하여 살고 있었다. 그 중에 이집트 지역에 제일 많았고 예수님 당시 그곳에 100만 명쯤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특히 알렉산드리아 인구의 1/3이 유대인들이었다. 서방에서 가장 큰 유대인들의 거주지는 도시 로마였다. 도시 인구의 1/60인 1만여 명이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곳에 있었던 회당들에는 이방인들도 유대교에 가입하여 유대교 신앙을 갖거나, 유대교 의식을 따르지 않았지만 회당예배나 유대습관 일부분에 참여하였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디아스포라 지역의 회당들이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그리스도교 이방선교의 거점이 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교회 역사적 사건이다.

로마제국 안에서 유대민족은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2세기 그리스도교가 고유의 특성을 분명히 드러내게 되자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헬라-로마인들, 유대인들 그리고 자신들이 세 번째 종족이라고 변호할 정도였다. 2세기 중엽까지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제국 안에서 유대인들의 특권을 공유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가 받은 신앙의 유산은 유일신 신앙이다. 말할 것도 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유대교처럼 그리스도교는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한 신이심을 믿는다. 신명기 6장 4-5절은 유대교도나 그리스교도에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유대교로부터 넘겨받은 또 하나의 중요한 유산은 구약성경을 70인 번역(LXX)성경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디아스포라의 문화는 아람어에서 헬라어로 변화되었다.

구약성경을 번역하는 일이 오랜 시간을 요했지만, 아리스테아스는 기원전 280여년 경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알렉산드리아에 도서관을 짓고, 책을 모았는데, 그 중에 히브리어로 쓴 구약성경도 포함되어 있었다.

왕은 이것을 당시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헬라어 번역을 요구하였는데, 72명의 학자들을 통해 헬라어로 번역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헬라어를 주로 사용하는 이방인 선교에서 구약성경을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된 70인 역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표준이 되었다.

70인 역은 헬라 사상의 신인 동형적인 사고들을 극복하고 헬라적인 심성을 가지고 받아들일 수 있게 번역하였다. 이 구약성경은 천년이 넘게 그리스도교 신앙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교는 알렉산드리아의 헬레니즘의 중기 플라톤철학과 결합되었다.

그리고 유대인 랍비 필로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보편적인 신학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던 사람이었다. 그리스도교의 처음 4세기 동안에 필로의 알레고리(은유, 풍유)적 성경해석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성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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