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성ㆍ 권위ㆍ신비감 회복 위한 좋은 길잡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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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성ㆍ 권위ㆍ신비감 회복 위한 좋은 길잡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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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7.2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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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희 목사 (연동교회)

교회 권위가 하락하고 있다는 지적은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 최근 추락한 교회 권위 회복의 한 방안으로 성직자 복식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사람의 옷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는 말처럼 성직자 의복은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다. 최근 한국교회발전연구원이 개최한 7차 연구발표회를 통해 한국교회와 성직자 복식이 갖는 의미를 조명했다. <편집자 주>

한국 교회 128년 역사 가운데 오늘처럼 위기적 상황에 직면한 때는 없었다. 교회는 사회의 불신의 대상이 되고, 교회의 내홍은 사회 걱정거리가 됐고, 급격한 시대변화는 교회로 하여금 적응력을 상실한 듯한 위기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교회가 추락한 권위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많은 요인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직자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본다. 개신교 성직자의 복식은 성직자 위상 회복의 한 요인으로 세 가지 회복으로 성직자 복식의 중요성을 살펴본다.

성직자의 복식은 성직자의 거룩성의 표현이다. 성직자는 하나님이 구분하여 특별한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이다. 물론 평신도가 거룩하지 않다거나 로마교회의 성직계급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지자로서의 부르심은 평신도로서의 부르심과는 구별되며 소명의 특수성을 포함하고 있다.

개신교의 성직자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바른 제사장직을 수행할 수 이도록 가르치는 자이며 모범을 보이는 자, 스스로 바르게 수행할 수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성직자에게는 부르심에 대한 스스로 직책을 성결하게 할 책임이 있다. 거룩성에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이 거룩해야 하는 당위성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직자는 거룩한 직책을 가진 자이며, 거룩한 직책을 가진 자는 구별된 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개신교 성직자의 복식은 평신도들과 전혀 구별이 없다. 성직자의 거룩성 회복은 평신도의 거룩성 회복을 유도하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교회의 거룩성 회복을 앞당길 것이다. 이와 함께 권위의 회복이 뒤따라야 한다. 제사장의 의복은 상당히 까다롭게 지어졌다.

하나님은 이런 제사장의 옷을 ‘거룩한 옷’이라고 하셨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들의 인간적인 더러움을 가리고 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하게 하신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의복은 권위의 상징이다. 제사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권위를 의복이 표현한 것이다. 제사장에게는 업무수행을 위한 권위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제사장이 권위를 상실하면 제사장직에 손상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는 권위주의시대에서 탈권위주의시대로 전환되면서 사회질서에 필요한 권위까지 상실한 듯하다.

가정에서는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학교에서는 교사의 권위가 추락하고, 사회에서는 사회를 구성하던 기존 권위가 무시되고 있다. 권위에 맹목적으로 의지해 해결하려고 하는 행동양식이나 구성하던 기존 권위가 무시되고 있다. 권위에 맹목적으로 의지해 해결하려고 하는 행동양식이나 사상을 뜻하는 권위주의는 배격해야 한다. 왜냐하면 권위주의는 상위의 권위에는 맹목적으로 따르는 반면, 하위의 권위에 대하여는 오만하게 강압하려는 심리적 태도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 젊은 판사들 사이에서는 탈권위주의적 바람이 불지만 그들은 법복을 벗지 않는다. 판사로서 권위를 잃지 않기 위해서다. 근래에 와서 한국 교회 개신교 성직자의 권위는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고 있다. 이미 교회는 더 이상 내세울 권위주의조차 없는 현실이지만 성직자 스스로 권위를 회복하고 다시 세워야할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성직자의 복식은 성직자의 권위를 회복하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신비성의 회복도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한국 3대 종교인 개신교ㆍ천주교ㆍ불교를 비교해 볼 때 젊은이들의 종교에 대한 호감도가 개신교보다 천주교와 불교가 높은 것은 천주교와 불교가 신비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나 불교의 성직자의 삶은 여전히 신비에 가려 있다. 그들의 삶도 인성도 그들의 의복 속에 감춰져 있다. 반면에 개신교 성직자의 삶은 심하게 노출되어 있다.

천주교의 경우 평신도가 성직자를 비판하거나 잘못을 노출시키는 것이 금기로 되어 있지만 개신교의 경우 성직자의 작은 실수나 비리도 삽시간에 인터넷을 통해 노출되고 유포시키고 있다. 성직자의 복식도 이런 맥락에서 우리 모두가 신중하게, 긍정적으로 고려해 봐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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