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및 산상수훈의 ‘복음 윤리’ 회복
목회자인 우리는 이제 스스로를 갱신, 개혁해야 한다. 목회자의 복음윤리를 회복하고, 목회자 윤리실천 강령을 마련해야 할 때가 됐다. ‘복음윤리’는 율법적 윤리가 아닌 복음적 윤리다. 율법적 윤리는 알고도 실천할 수 있는 능력과 은혜가 없는 윤리이지만, 복음적 윤리는 알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과 은혜가 있는 복된 소식이다.
‘복음윤리’를 너무 학문적으로,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되는 십계명을 생각해보자. 십계명을 바로 해석하고 실천할 뿐 아니라 우리가 사죄의 은총을 누리면서 십계명을 마음으로부터 말과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게 해 주신 예수님의 산상보훈을 생각해보자.
‘우상을 두지 말고, 만들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 제1, 2계명 면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보이는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않는가. 각종 행사장과 언론에 얼굴을 내밀고, 사진 내고, 순서 맡고, 인정과 대접을 받고자 하는 명예의 우상을 섬기고 있지 않은가.
‘여호와의 이름을 오용하지 말라’는 제3계명 면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개혁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개혁주의 원리에 따라 개혁하는 일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오직 ‘개혁주의’만 외치며 ‘개혁주의자’인양 자처하면서 ‘개혁주의 안전지대’에 안주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관련된 ‘개혁주의’의 오용이 아닌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가장 자주 부르면서 불의한 돈을 뜯어감으로써 가장 자주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에 욕을 돌리는 것은 어떻게 볼 것인가.
‘구약의 안식일, 신약의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제4계명 면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나님 경배에 몰입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쾌락에 몰입하는가. 이웃 섬김에 집중하는가 아니면 나의 오락에 집중하는가.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 면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나님을 섬기면 부모님을 섬기지 않아도 된다는 현대판 ‘고르반’에 빠져 있지 않은가. ‘살인하지 말라’는 제6계명 면에서 사실무근의 허무맹랑한 유언비어를 퍼뜨려 유명인이나 라이벌의 인격과 영예를 죽이지 않는가.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데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퍼뜨리거나 묘하게 왜곡해서 상대를 매장하지 않는가.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 면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7계명을 범했음에도 끼리끼리 보호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덮어주고 지나가는 것은 아닌가. ‘도적질하지 말라’는 제8계명 면에서 교인들의 헌금을 비공개적으로, 정치자금 명목으로 도적질하지 않았는가. 판공비를 양심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개인과 가정을 위해 도용하지 않았는가.
예배당 건축시 업자로부터 뇌물을 받고, 그것을 비자금으로 이용하지 않았는가. 축복기도의 명목으로 교인들을 회유해서 돈을 받아내지는 않았는가. 돈을 많이 주면 복을 빌고, 안 주면 저주하는 거짓 선지자 노릇은 하지 않았는가. 교회 분쟁을 유발해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게 해서 교회 건물과 재산을 갈취하지 않았는가.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제9계명 면에서 회의에서 결정한 내용을 총회나 노회에 보고할 때 변조하거나 첨가하거나, 그것을 동조하고나 묵인하지는 않았는가. ‘탐내지 말라’는 제10계명 면에서 섬기는 교회보다 더 큰 교회 건물이나 예산이나 교세, 사례금을 탐하지 않았는가. 더 큰 교회 목회자의 명예나 승용차, 집무실을 탐하지 않는가.
십계명에 비추어 목회자는 누구를 비판하기보다는 각자가 모두 성경의 거울 앞에 발가벗고 선 자세로 솔직하고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로 살 수 있는 규범과 바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순종은 우리 각자의 몫이지, 하나님의 은혜 여부로 돌려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는 평신도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항상 세상의 빛과 소금답게 살아야 한다. 복음 윤리에 대해 둔감하고 경직된 나머지 심각한 죄를 짓고 나서도 가책이 없고, ‘다 그렇지 않아? 나만 그런가’하면서 관행으로 자기 정당화를 하는 현실 속에서 목회자는 자기 고백, 자기 개혁, 자기 갱신, 자기 회복 차원에서 십계명을 지키는 복음윤리를 실천해야 한다.
목회자 권위, 개인적 소유물 아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교회를 섬긴다. 그러나 목회자의 부르심은 평신도의 부르심과는 구분돼야 한다. 목회자의 부르심은 교회의 믿음, 세상사에 대한 교회의 공적 해석, 회중 앞에서 교회의 전통을 대변하는 공적 직무로의 부르심이라는 점에서 교회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목회자는 개인적이고 내적인 부르심은 교회에 의해 외적으로 검증받아야 한다.
목회자의 권위는 말씀을 가르치고, 성례를 집행하며 교회의 생활과 사역 전반을 감독해 바른 길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감독하는 권위다. 이 권위는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으며, 성령 안에서 현존하며 말씀에 속한 권위다. 따라서 목회자는 이 권위를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소유물로 인식해서는 안된다. 목회자가 이 권위를 자신의 개인적인 소유물로 인식하면 목회사역의 은사적이고 성령론적인 다양성이 흐려지고, 목회사역은 율법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소수의 성직자 집단의 독점적 사욕으로 부당하게 제한된다.
목회직은 공동사역이라는 본질적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목회자는 한 지교회의 담임목사로서 홀로 청빙을 받고, 지교회를 혼자 관할하게 되는 바, 이 상황은 목회자의 협력정신을 약화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 더욱이 목회자가 목회에 성공해 교인들로부터 칭찬과 사랑, 존경을 받게 되면 독단적으로 일을 치리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 된다.
일부 목회자들이 중상류층 수준의 생활을 하는 것은 가장 약한 자에게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청하시는 하나님의 요청을 외면하는 것이며, 아벨의 안위를 물었던 하나님의 물음을 거부하는 가인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경제적 여건이 넉넉한 목회자는 경제적 여건이 열악한 동료 목회자들을 어떤 형태로는 도울 수 있어야 한다.
목회자는 교회정치에 투명해야 한다. 이는 교회정치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교회정치가 공개적으로 진행될 때 취약할 수가 있으나, 취약함이 뒤따르는 공개적인 교회정치가 효율적인 은밀한 교회정치보다 더 나은 것이다. 세속적인 정치가들이 권력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교회권력의 장악을 시도하고,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정치적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교회에 심각한 고통을 안겨 주며 교회의 본질을 훼손시킨다.
목회자가 자신이 설교를 통해 말한 바를 먼저 자기 자신의 사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도덕적 자질, 곧 덕을 갖춰야 한다. 다른 목회자의 설교를 도용하는 행위는 재산을 훔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진리의 선포자인 목회자의 신분에 모순된다. 진리를 전해야 할 목회자의 신분과 비 진리를 특징으로 하는 설교표절을 수단으로 해 진리를 전하는 행위는 조화될 수 없다.
목회자는 평신도들이 자신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존재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고유한 소명과 재능을 적절히 인정해 주어야 한다. 또한 사회적 신분과 재정적 기여도에 관계없이 모든 평신도들을 평등하고, 공정하게 대해야 한다.
목회자는 목회를 하는 과정에서 교인들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때 목회자는 정보를 이용해 교인들을 장악하거나 그들의 명예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거나 자신의 계획과 목적을 위해 이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목회자는 자신도 성적으로 무성적인 사람이 아니라 기혼자든, 독신자든, 미혼자든 전적으로 성적인 사람들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목회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성적인 속성들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목회자도 성에 뒤따르는 모든 유익과 위험을 공유해야 한다.
목회자는 검소한 생활로서 만족하는 삶의 본을 보임으로써 부유한 교인들에게는 부에 탐닉하지 않도록 무언의 경고를 함과 동시에 가난한 교인들에게는 무언의 위로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목회자는 교회의 통장을 목회자 개인의 이름으로 개설해서는 안된다. 교회의 통장을 교회의 이름으로 개설하고, 통장과 인장 등을 공적으로 관리하게 하는 조치는 목회자가 유혹에 빠지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아준다. 목회자가 교회재정을 거룩한 목적이 부합하지 않게 사용하거나 개인적으로 전용하거나 낭비하는 것은 하나님의 헌금을 도둑질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교인들을 배반하는 행위임을 명심해야 한다.
목회자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정치활동을 포함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목회자는 교인의 신앙성장, 도덕적 성장, 예언자적 증언에 있어서 성장하도록 양육하는 것이 본무임을 잊어서는 안되며, 사회활동이 이 본무에 침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상원 교수가 제안한 '21세기 목회자 윤리강령' 1. (소명) 목회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