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정치 세력화, 교세 감소의 실제적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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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정치 세력화, 교세 감소의 실제적 원인
  • 김동근 기자
  • 승인 2012.02.2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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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유착이 불러온 폐해는 무엇인가

▲ 지난 17일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주관으로 ‘한국에서 종교성은 정치와 어떻게 조우하는가’를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1990년대 이후 나타난 기독교 교세 감소의 이유로 ‘기독교 정치 세력화’가 지목되고 있다. 또한 기독교 내 폭력 문제도 정치 세력화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17일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는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주관으로 ‘한국에서 종교성은 정치와 어떻게 조우하는가’를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발제자로 나선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연구실장 김진호 목사는 “기독교의 이념적, 폭력적 변질이 정치세력화로 나타나면서 교세 감소의 실제적 원인으로 둔갑했다”고 주장했다.

한국 교회는 1961-1970년에 412.4%, 1971-1977년에 56.7%, 1978-1985년에 29.7%, 1986-1991년에 23.9%로 매우 높은 성장 추세를 보이다가 1992-1995년 사이에 9.0%로 급락했다. 또 2005년 발표된 인구 센서스의 결과에 의하면 1995년에 비해 개신교 신자의 수가 1.6% 감소했다. 교세 감소에 대한 원인 분석이 필요한 대목이다.

시대적으로는 1990년대를 기점으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즉 민주적 제도화 10년에 대한 해석을 본격화하게 되었고, 기독교가 추구하는 정치적 제도를 위해 무엇을 비판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이에 대해 김 목사는 “기독교의 위기는 민주화와 연관되어 있고, 민주화로 인해 갖게 된 시민의식을 통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 신앙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함으로 사회화, 국가화 하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 종교와 폭력의 관계
이와 같이 기독교 같은 종교의 정치 세력화가 불러온 폐혜 중 하나는 폭력의 문제이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장석만 박사는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며 국내의 종교 폭력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종교 폭력 발생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예로 1998년 조계종의 폭력 사태와 1999년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이 문화방송의 주조정실을 점거 해 방송을 중단시킨 사건을 들며 “종교 폭력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고 꼬집었다. 또한 최근 이슬람권의 ‘기독교 혐오증’과 한기총의 용역 동원사태는 종교 폭력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단적인 예로 나타났다.

2011년 11월 대법원에 의해 사단법인 설립을 허가받은 ‘한국기독교화해중재원’은 법정 소송으로 가기 전에 기독교 교회 내부의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설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교인 혹은 교회 관련의 송사가 전체 민사 재판의 약 18%를 차지하는 것도 기독교의 폭력이 증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장 박사는 “중재원이라는 제도를 만들면서까지 ‘화해’를 시도할 정도로 종교적 폭력의 수준이 심각해졌다”며 “더불어 개신교 선교집단이 해외에서 일어나는 종교 폭력의 주동세력이 되고 있다”며 우려 섞인 말을 전했다.

다른 문화권을 대상으로 한 해외선교가 종교 폭력을 유도한다는 것으로 지적됐다. 해외 선교사들의 선교방법은 대부분 현지의 문화와 역사를 고려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개종시키는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많은 갈등을 야기한다는 주장이다. 2007년 아프간 인질사태는 이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것으로 제1의 폭력이 곧바로 제2의 폭력을 불렀다.

이와 관련 ‘무례한 기독교’의 저자 리처드 마우는 저서에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진리를 주장하는 방식을 비판하며 공적인 영역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은 독단성과 과격성을 벗어나 타인을 인정하는 정중한 태도를 가져야한다”고 말했다. 또한 현대 기독교가 가지는 과격한 십자군식 승리주의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이와같은 기독교안에서의 폭력문제는 정치세력화의 문제로 귀결된다.

# 교회의 정치 세력화 어떻게 나타났나?
김진호 목사는 “개신교의 지배층과 극우 세력의 결합은 해방 후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지만, 근래 주목할 만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거 정치 지배층은 몸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해왔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들어와서는 이른바 개신교 보수층이 거리로 뛰쳐나와 정치적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목사는 “자기들이 바라는 대로 정치 판도가 짜여져 불만이 없었던 그들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세우며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이를 비난하며 즐기다가, 정권이 바뀐 후에는 정치 집회를 참여하여 정부를 비난하며 거리투쟁을 일삼고 기독교 정당을 조직하고 있다”고 꼬집어 말했다.

또한 “‘장로 대통령 만들기’라는 이슈로 교회로 하여금 기독교 국가의 꿈을 꾸게 했다”고 말하며, “군부독재체제 이후 막 시작된 한국사회의 새로운 미래구상에 교회가 참여하도록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그때 부상한 논점이 기독교식 통일론인데, 1989년 결성한 한기총을 중심으로 대형교회 중심의 정치적 전선이 형성됐고, 그 결속의 중심에는 멸공, 친미적인 통일 논의에 있었다. 김 목사는 “이때 교회는 수동적 방식의 정치적 개입이 아닌 적극적인 정치 개입의 길에 들어섰다”고 설명했다.

기독교 정당에 관해서는 김한식 한사랑선교회 대표의 1997년 대선 출마를 시작으로 꼽았다. 그 역시 반공과 친미를 강조했고, 기독교의 사랑의 정치를 주장했다. 결과는 0.18%의 득표로 참담했다. 그 이후로도 2004년 기독민주복지당, 2008년 기독사랑실천당 등 기독교 정당을 통한 정치 세력화 시도는 계속 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 교회적 신앙을 사회적 신앙으로
그렇다면 종교가 폭력과 정치 세력화에서 벗어나 추구해야하는 것은 무엇인가 “종교가 지켜야 할 제자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장석만 박사는 “종교를 개인의 신앙심이라는 영역에 있도록 만들고, 정치의 영역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며 “개인의 종교 자유를 보장하고, 정교분리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과 “제자리를 지키는 종교끼리 서로 관용을 베푸는 종교평화의 세계를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진호 목사는 “기독교 정치 세력화의 주된 이야기는 ‘적’으로 해석된 ‘타자’에 대한 증오와 적대를 기반으로 한다”며 “타자는 개조의 대상이지 공존과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정치가 이웃을 적으로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적을 이웃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이런 정치는 신앙의 사회적 영성화에 따르는 생각과 행위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반대로 이웃을 적으로 만드는 정치에 대해서는 “오히려 사회적 영성을 유실하는 행보와 다름 없다”고 말하며, “정치 세력화를 도모하는 오늘의 교회가 품어야하는 생각은 ‘사회를 교회화’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적 신앙을 사회적으로 영성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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