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풂이 더 큰 축복을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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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풂이 더 큰 축복을 낳습니다"
  • 승인 2002.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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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구나!”
그랬다. 40여 년을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남편은 어느날 그렇게 말했다. 생후 3일 만에 호흡장애로 죽음 앞에서 무너져 가던 아들, 귀 이상으로 대수술을 받아야 했던 딸이 거짓말같이 말끔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고침받자 남편의 입에서는 이 말이 흘러나왔다.

남편이 하나님 앞에서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누가 하나님을 알려준 것도 아니었는데 남편은 아이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신앙 안에서 성장하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말하고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다.

대전에서 ‘피자 2001’을 운영하고 있는 이경란 집사(대전 우리교회)는 담담하게, 여리고 여린 목소리로 떠났던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된 과정을 이야기했다. 모태 신앙으로, 그리고 독실한 신앙의 가정에서 성장해 온 이 집사였지만 “조부모님과 부모님, 숙부와 동생들까지 3대의 생활을 책임져야 했던 장손 남편(김명중. 52)을 만나 생계에 대한 책임과 사업 확장 등을 구상하면서 어느덧 하나님을 떠나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고 이 집사는 말했다.

그러나 교회로 향하는 발걸음은 8년여의 시간이 흐른 후에나 가능했다. 참 긴 시간이었지만 당시 연세중앙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언니는 끝까지 참으며 이 집사 가족을 기다려주었고 눈물로 기도해 주었다.
한 때 패션업계의 잘나가던 인물로 부각되기도 했던 이 집사는 주위의 많은 친구들이 IMF 여파로 나무쓰러지듯이 퍽퍽 쓰러져 갈 때 굳이 외식업계에 뛰어들었다. 생활이 어려워지면 먹는 것부터 먼저 줄이는 것이 사람의 심리인데 이 집사는 과감히 ‘피자 2001’이라는 외식업을 선택했다. 당시 피자집이 자리잡았던 은행동은 피자헛과 성심당 사이. 도미노피자, 미스터피자 등 내로라 하는 피자 가게들이 즐비하게 자리한 곳이었다.

배짱좋은 도전이었다. 그러나 그 거대하고 장사 잘 되던 두 가게 사이에서 막막했지만 이 집사의 피자 2001은 저렴한 가격과 좋은 품질로 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았고 이들도 부러워할만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이 집사의 선택은 과감하고 간단했다. “‘온 가족이 함께 살아보자’는 계산에서였어요. 당시 제 주위에는 직장을 잃고 생계를 걱정하는 친척과 친구들이 많았어요. 이들을 살리고 함께 살아나가는 방법은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같은 결론에 도달한 이 집사는 패션업을 정리하고 피자업계로 뛰어들었다. 같이 먹고 살자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에서였지만 하나님이 미쁘게 보셨던 것같다고 이 집사는 말한다. 이 집사의 저가 공격은 적중했다. 타 브랜드에 비해 고급 토핑과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저가의 가격으로 승부하자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 넓던 은행동이 좁아보이고 매장은 1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3층으로 확장되고 지점 또한 늘어나 현재 전국에 53개의 지점이 생겨났다.

광고에 의한 성장이 아니었다.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고, 지점 또한 마찬가지였다. 손님이 늘어나자 매장도 늘어났고 은행동을 비롯한 대전 시내는 2001 피자를 배달하는 오토바이 소리로 요란했다.
그러나 이 집사의 이런 성공은 우연한 것은 아니었다. 12년여를 대전의 집과 서울의 연세중앙교회를 오르내리며 쌓아온 신앙의 힘이었고, 철야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하며 하나님을 만났던 대경과 준경 두 자녀의 눈물겨운 기도의 힘이기도 했다.

지금 청년으로 성장한 두 자녀들은 당시 초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언니집에서 기거하면서 연세중앙교회에서 드려지던 매일 철야예배를 빠지지 않고 출석할 정도로 교회에 열심이었다.
아들 대경은 심각한 호흡장애에도 불구하고, 딸 준경은 귀에 이상이 생겨 대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찾았고, 어두운 새벽길을 더듬으며 예배에 참석하던 이들의 신앙은 주위 사람들을 감동, 이들의 열심을 보고 스스로 하나님을 찾게 하는 정도였다.

12년 동안 계속된 주일예배 출석은 동이 터오던 새벽 5시에 대전을 출발, 다음날 새벽 1시 파김치가되어 집에 도착하는 고된 일과였음에도 누구하나 불평하는 일이 없었고 서울로 향하는 길은 설레임과 신앙의 길이었다.

이 집사는 “때로는 눈과 비로 길이 막히기도 하고 몸이 지쳐 피곤한 적도 있었지만 예배에 참석해 말씀을 들을 때면 세상에 고정된 마음이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그리고 그때의 신앙의 열정은 지금도 계속돼 구역예배를 통해서 초청한 사람들마다 은혜를 받았고 서로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리겠다며 신앙을 선택하는 가정이 수십 가정으로 늘어나게 했다.

이제 이 집사의 피자 2001은 개척 교회와 고아원, 각급 학교로도 찾아간다. 피자 2001을 시작하던 95년부터 이 집사는 전국의 개척 교회와 고아원, 학교를 찾아 피자를 전달했고, 장학사업에까지 그 관심사가 이르게 됐다.
장학사업은 IMF로 지원이 거의 끊어졌던 당시에 시작한 일이어서 특히 대전시 교육계의 주목을 받았다.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전국 그림그리기대회 수장자들에 대한 상금지원이 그것인데, 올해로 3회째를 맞고 있는 이 대회에 매년 5천만원 정도의 상금을 장학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적지 않은 액수지만 앞으로 장학사업은 계속될 것”이라고 이 집사는 말한다.

이 집사의 또다른 기도 제목은 ‘교회 건축’. 어릴 때부터 교회와 고아원을 건축해 온 친정 분위기에서 성장했던 이 집사에게 있어서 교회 건축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하는데 “복음전파를 위해 하나님이 제게 맡기신 물질을 그대로 되돌려 드리는 것 뿐”이라며 교회 건축이 계속되는 사업임을 스스로 주지시킨다.

화려해 보이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이경란 집사는 하나님 앞에 꾸밈없는 모습으로 나가기를 원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숨겨진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부를 즐기고 싶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집사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그 돈이면 교회 없는 목회자들의 꿈이 이루어지고 이 땅에 교육의 푸른 나무들이 자라간다”며….

공종은차장(jekong@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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