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WCC 회원 교단 역할 축소 땐 ’책임'도 분산
상태바
[해설]WCC 회원 교단 역할 축소 땐 ’책임'도 분산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1.07.19 19: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CC 한국 준비위원회 발족 앞두고 풀어야할 과제는 무엇인가

지난 11일 열린 WCC준비기획위원회 간담회에서 “총회 준비에 차질이 없다”고 밝힌 김삼환 목사는 WCC의 정신인 ‘대화와 타협’을 통해 얽혀있는 실타래를 풀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준비위원회 발족을 앞두고 충돌하는 몇가지 문제의 해결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영주 총무에게 맡긴 기획위원회는 빠르면 오는 25일 한국준비위원회 구성의 뼈대를 완성하고 출범을 선언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논의와 발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갈등이 남아 있다. 총회 유치와 준비의 주체, 곧 모든 책임의 주체를 두고 각기 다른 해석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김삼환 목사를 중심으로 20여명 가까이 구성된 준비기획위원회는 ‘복음주의권 중심의 준비’를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기획위원회에 참여하는 복음주의권 인사들은 WCC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복음주의권의 참여’가 추진되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

반면, 지난 18일 긴급모임을 연 감리교는 “WCC 총회는 교회협을 중심으로 WCC 회원 교단이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성공회 역시 “교회협 중심의 총회 준비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얼핏 보기에는 복음주의권의 참여와 교회협의 주도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갈등의 본질은 기획위원회 일부와 WCC 회원 교단 중 감리교, 기장, 성공회의 대립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스위스 공문사건에 대해서도 “문제없다”는 입장을 보인 기획위원회 일부 그룹과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3개 교단의 입장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다.

# 총회준비를 둘러싼 몇가지 오해

11일 간담회에 참여한 한국기독교복음주의협회의 회장 김명혁 목사는 “WCC에 정통한 모 인사가 한국 총회가 교회협과 WCC 회원교단만의 총회가 아니라 복음주의권과 오순절을 포함하는 총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교회협이나 WCC 회원 교단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준비위원회는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복음주의권이 빠지면 WCC본부측에서 한국준비위원회를 마뜩치 않아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이야기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복음주의권의 참여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분열된 한국 교회를 하나로 모으고, 갈등의 원인이 된 WCC 관련 신학적 대화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점에서 준비위원회에 복음주의권이 참여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기획위원회는 복음주의권 참여에 집착한 나머지 회원 교단의 역할과 참여를 축소시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실제로 WCC는 어떤 입장일까. 지난달 보내온 WCC 트베이트 총무의 감사 서신에는 준비위원회 구성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언급했다. 트베이트 총무는 “한국측 준비위원회에 복음주의권과 오순절, 한국정교회, 그리고 로마 가톨릭교회 등을 포함하는 폭넓은 범위를 망라하게 되리라는 사실이 매우 고무적”이라고 표현했다. 복음주의권 참여에만 환영의 뜻을 표한 것이 아니라 가톨릭과 정교회 등 폭넓은 참여를 지지했다는 설명이 더 정확하다.

이어 트베이트 총무는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드린다”며 준비위원회에 꼭 필요한 부분을 강조했다. 트베이트가 한국 교회를 향해 다시 상기시킨 것은 “준비위원회에는 프로그램상의 활동과 의사결정 구조 모두에 있어서 ‘여성과 청년’의 완전한 참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WCC의 활동에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모든 구성원들이 존중을 받고 또 대표권을 가진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에큐메니칼운동을 강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두가지 문장은 WCC총회의 성격을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다. WCC는 총회 준비와 회의 구조의 결정에 있어서 ‘모든 구성원’의 평등한 참여를 중요시 하고 있다는 점과 ‘여성과 청년’의 참여가 신학적 차이를 둔 복음주의권의 참여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강화’에 두고 있다.
즉, WCC 총회는 에큐메니칼운동의 저변 확대, 인적 자원의 발굴, 폭넓은 대화와 교류 등을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감사 편지 속에 담아 다시 한 번 한국 교회에 상기시킨 것이다.

서한 중에 회원교단의 참여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총회를 유치한 회원 교단들의 역할과 책임이 기초에 깔려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기획위원 중 한 사람이 “회원 교단 중심의 준비위원회 구성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면 이것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회원교단의 역할 축소할 수 있나?

WCC 총회 준비는 유치를 신청한 한국 교회(WCC 회원 4개 교단, WCC 비회원이지만 교회협 회원 교단, 한국 가톨릭, 한국정교회)에 있다는 점은 지난 3월 한국방문에서도 확인한 바 있다. WCC는 당연히 중요한 대화 파트너로 삼고 있는 ‘복음주의권’이 준비위원회에 들어온다면 더할 것 없는 폭넓은 구성이라는 고무적 입장을 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획위원회 일각에서는 ‘복음주의권의 참여와 주도’를 재차 강조하면서 회원교단과 교회협의 색깔을 빼는데 주력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갈등이 쉽게 풀리지 않은 구조에 있다. 준비기획위원회 20명 중 복음주의 참여를 강력히 지지하는 통합측 인사가 4명이 포진해 있고, 실제 복음주의권에서 6~7명이 참여하고 있다. 교회협과 WCC 3개 회원 교단 인사는 6명으로 이미 위원회 자체가 불균형한 모습을 띠고 있어, 에큐메니칼권의 의사가 잘 전달되지 않은 한계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회원 교단 총무들의 대표성을 ‘개인적’인 것으로 폄하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1일 기획위원회 간담회에서는 “6월 20일 3개 회원 교단 총무들이 낸 성명은 개인차원의 것임을 확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성공회까지 확인할 수 없지만 기장과 감리교는 총무들이 개인적으로 낸 의견이라는 것이다. 간담회에 참여한 한 인사는 “기장측 위원이 우리는 교단의 입장이 아니라고 말했고, 감리교에 대해서도 교단에서 실질적 대표성이 모호해 전체의 입장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오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8일 감리교 에큐메니칼 인사들은 긴급모임에서 “총무단 성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교단의 입장도 같다는 뜻이다. 교단 총무들의 의견이 무시되는 것은 교단의 에큐메니칼 대표성을 왜곡하는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나아가 4개 WCC 회원 교단 총무들의 결의에 의해 탄생한 준비기획위원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준비기획위원회가 구성됐으니 그 안에 전권이 있고, 한국준비위원회가 발족하면 그 속에서만 전권을 갖는다는 생각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책임소재’ 논란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WCC본부 총회준비위원회 정해선 부위원장은 “정확히 인지해야할 것은 WCC가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권의 공동 참여를 요구하는 것은 맞지만 모든 책임과 권한은 4개 교단에 있다는 점”이라며 “재정과 교육, 홍보는 총회를 유치한 WCC회원 교단에 우선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만일 WCC 총회 준비 과정에서 4개 교단의 책임을 약화시킨 채 준비위원회가 모든 권한과 책임을 가져간다면 2013년 총회 후 남게 될 재정과 앞으로 2년 동안 전개할 에큐메니칼 교육의 문제도 준비위원회의 몫이 된다. 결국 복음주의권이 준비위원회에서 상당한 자리를 차지한다면 ‘재정적 부담’도 고스란히 복음주의권이 공동 부담해야할 부분이라는 점이다.

WCC 회원인 통합과 감리교, 기장, 성공회 등 4개 교단의 역할을 축소한다면 결국 ‘책임’도 분산된다는 사실을 준비위원회 참여 단체와 교단들은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이런 혼란 속에서 기독교사회운동진영이 19일 WCC 총회 준비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기독교사회운동진영은 "한국 총회준비위원회 인선은 기계적인 교단 안배를 벗어나, 전체 한국 교회 에큐메니칼 역량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독교사회운동진영은 또 "준비위 구성과 관련, 불협화음이 종식되고 '일치와 연합'이라는 본래의 정신이 발휘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