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지도를 만들어 주는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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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지도를 만들어 주는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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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5.1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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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제 목사<평촌평성교회>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달에 특별히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돌아본다. 이와 관련하여 상담심리학자 ‘스코트 펙’이 한 말은 아주 의미심장하다. ‘자녀들은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생애 첫 지도를 작성하며, 이후 그것은 그들이 평생 의지하여 살아갈 기본 지도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지도는 이후에도 수정 보완을 통해 점점 더 완성도를 높여 가게 되지만, 그러나 그 일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첫 지도는 중요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지도책도 수정하는 일이 쉽지 않은데 사람의 마음속에 그려진 지도이니 오죽 하겠는가? 그 중에 어떤 경우는 처음부터 지도가 너무 잘못되어 있어서 현실에서 도무지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그 지도를 따라 사는데 문제가 너무나 많은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지도를 수정하는 것을 넘어 완전 개정해야 하는데, 그 일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워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에서 정신질환을 앓게 된다고 한다. 현실의 지도가 너무나 맞지 않는 데서 오는 혼란과 스트레스가 극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그 일을 포기하고 그냥 자신이 가진 지도를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우기면서 산다고 한다. 그렇지 않겠는가? 마음의 지도가 잘못되어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면 사람들은 그 일의 고통스러움과 난해함에 처음부터 질려 버리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틀렸으면서도 고치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현실을 원망하고 주변을 비난하는 이유도 그것이라 한다.

스코트 펙의 이야기를 음미해 보면서 우리를 돌아보면, 성인이 된 우리가 왜 이렇게 반응하며 사는지를 알 것도 같고, 동시에 부모된 우리들의 양육 책임이 얼마나 큰지도 느끼게 된다. ‘부모는 자녀들의 가슴 속에, 그들이 평생 지니고 다닐, 생애 첫 지도를 그려주는 사람’이라는 대목에서 우리는 참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책임감을 느낀다.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느끼고 반응하며 어느 길로 선택하며 살아가느냐는 것이 기본적으로 부모에게 달렸다니 얼마나 그 책임이 무거운가! 부모가 자녀를 얼마나 일관성 있게 대하는지, 말과 약속을 얼마나 신실하게 지키는지, 어떤 돌봄을 주는지, 어떤 삶을 보여주는지에 따라 부모에 대한 기대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는 아이들이 경험하는 세계의 거의 전부여서 부모와의 관계에서 내려진 결론은 곧 세상에 대한 아이들의 기본 지도가 되는 것이다. 부모의 말이 수시로 바뀌고, 아이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면 아이는 결코 세상에서 듣는 약속들을 별로 귀담아 듣지 않을 것이며, 자신 또한 말에 책임질 필요를 거의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모든 일에 별 기대나 관심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 아이로 비칠 것이다. 또 선생님과 같은 권위 있는 사람들의 말조차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임으로써 문제가 될 가능성도 많다. 그러므로 부모는 생애 첫 지도를 통해 아이들을 한없이 복된 세상에서 살게 할 수도 있고, 한없이 고통스런 세상에서 살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점에서 요즈음 세대를 보면 참 염려스럽다. 요즈음 부모들은 사교육 뒷바라지에만 몰입하여 정상적인 부모의 역할을 거의 상실하고 있는 것 같다. 유치원 때로부터 부모들이 보여주는 교육열은 난리도 아니다. 선행 학습 등 아이들을 ‘오직 이기게 하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 정말 중요한 것들은 다 놓치고 있다. 높은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 부모들은 1년 365일 외출 중이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학원에 맡겨져 있고, 아이들의 눈에 비친 부모의 모습은 학원비를 대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하는 것 뿐이다.

무엇보다 자녀들 앞에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는 일을 못하고 있다. 학원비를 대기 위해 일 나가는 모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과 삶을 어떻게 멋있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일인데 그 일을 전혀 못하고 있고, 그 일을 위해 고민하는 모습조차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우리의 자녀들의 첫 지도는 너무 엉성하고 함부로 그려지는 것이다.

거기에는 정말 가치 있는 삶을 위해 나아가는 길은 전혀 그려져 있지 않고, 오직 학원에 가는 길과, 어떻게 해서든 학원 뒷바라지를 하는지 그 길밖에는 그려져 있지 않다. 그러니 대를 이어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생애 첫 지도에 그런 길밖에 그려져 있지 않으니 이 사교육 열풍이 어느 세대에 끝날지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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