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있는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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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있는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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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4.2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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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찬 목사<백석신학원 학장>

대부분 사람들은 고난 없이 행운이나 축복이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고난은 나에게서 떠나기를 기도하기도 한다.

사순절을 지나 이번 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신 것을 기억하고 그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 고난주간으로 지킨다. 이 고난주간을 지키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고난에도 차원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고난은 무익한 고난이 있으나 어떤 고난은 유익하고 의미 있는 고난도 있다.

성경은 3가지 고난의 차원을 말하고 있다. 첫 번째로 가장 낮은 차원의 고난은 자기 죄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다. 자신이 잘못한 댓가로 형벌을 받아 고난을 당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나 하나님께 아무 유익이 없다.

두 번째는 상대방이 주는 고난이다. 경쟁자가 시기 질투하여 고통을 준다든지 형제끼리 서로 미워하며 고통을 준다든지 상대방으로부터 까닭 없이 당하는 고난도 있다.

그러나 세 번째 가장 높은 차원의 고난은 잘못 없이 인간의 시기나 질투 시험의 차원을 넘어서서 받는 고난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 하나 때문에 핍박과 박해를 받는다든지 예수그리스도를 전하고 선교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순교를 한다든지 하는 고난이다.

우리는 짐과 십자가가 다른 개념임을 알아야한다. 주께서는 이런 짐은 계속지고 다니라고 하지 않으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하셨다. 짐은 주께 맡기고 쉬고 벗으라고 하셨다. 그러나 십자가는 지고 오라고 하셨다.

주께서는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 9:23)라고 하셨다. 왜 짐은 벗고 십자가는 지고 오라고 하셨을까? 짐은 맡기면 주께서 대신 짐을 저 주신다.

그러나 십자가는 지고 오라고 하셨다. 십자가는 인간의 죄 값으로 받는 고난도 아니고 경쟁자가 질투하여 받는 고난도 아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받는 고난이다.

이 고난은 주의 율례를 배울 뿐 아니라 고난에 동참함으로 주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난 없는 영광도 없고 십자가 없는 부활도 없다. 십자가를 지닌 고난은 피할 고난이 아니라 즐겁게 지고 가야 할 고난이다. 의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받는 고난의 십자가야 말로 가장 높은 차원의 고난이요 값진 고난인 것이다. 이번 고난주간에 삼차원의 고난을 받을 주님의 제자가 이 세상에 많이 나온다면 짐 진 자가 줄어드는 세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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