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과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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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거장과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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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11.17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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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목사< 서초교회>

이 시대의 많은 공동체들이 정거장처럼 변해간다고 염려하는 학자들이 있다. 현대 대도시의 생활방식과 생활 감정이 그대로 잘 나타나는 곳이 정거장이다. 수없이 모이고 흩어지고 순간적인 접촉은 수없이 일어나지만, 내적인 만남과 진정한 관계는 아주 빈약한 곳이 바로 정거장이다.

이 시대의 많은 교회와 성도들은 정거장에 줄지어 선 사람들과 비슷해져가는 것은 아닐까? 정거장처럼 변해가는 교회들은 믿음에 근거한 내적인 관계를 회복해가야 한다. 이 시대 교회들의 인간적이고 피상적인 관계들은 내적인 믿음에 근거한 관계로 변화돼야 한다. 믿음 소망 사랑에 근거한 관계 회복을 추구해 갈 때, 교회의 미래에 소망이 있는 것이다.

정거장은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모이는 곳이다. 정거장에 모인 사람들은 변화무쌍하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거기에 오래 머물러 있으려 하지는 않는다. 가고오고 하는 사람이 수시로 바뀌는 곳이 정거장이다.

정거장에서 모르는 사람들끼리 몸을 약간 부딪쳐도 거기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정거장에서는 그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난다. 몸을 부딪치는 일이 자주 생긴다 해도, 부딪친 사람들끼리 서로에 대하여 알려고 하지 않는다. 정거장에서 서로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좀 이상한 일이다. 그게 바로 정거장이다.

날씨가 추어져 갈 때, 정거장에서 본 어떤 아주머니가 비싼 털 코트를 입었다. ‘나도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저런 털 코트를 사야지’ 라는 생각을 한다. 어떤 젊은이는 최근에 나온 스마트 폰으로 친구와 대화를 나눈다. 옆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그들의 대화를 엿들어도, 정거장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이상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 정도가 정거장의 한계이다. 그 이상의 내적인 관계, 그 이상의 진정한 만남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바로 정거장이다.

정거장에서 내 앞에 줄을 섰던 사람이 갑자기 떠난다 해도,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건 아주 잘 된 일이다. 내가 버스에 오를 순서가 그만큼 가까워진 셈이니까 말이다. 자꾸자꾸 사라지고 나도 이제 곧 이 정거장에서 떠나는 것이 당연하다. 그게 정거장의 생리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가족 중에 누군가가 갑자기 멀리 떠나면, 우리는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멀리 떠났던 가족이 어느 날 돌아오면 우리는 너무나 기뻐한다. 그동안 어디서 얼마나 고생하며 살았는지, 긴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앞으로 함께 살아갈 계획을 세운다.

교회는 ‘성도의 교제’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의 교제와 관계 속에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살아가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은 사람들을 일컬어서 형제요 자매라 부른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은 동일하신 한분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믿음의 형제요 자매요. 하나님의 백성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정거장에 잠시 줄지어 서서 정해진 시간 따라 오고가는 인생 버스나 기다리는 그런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믿어야 한다.
정거장에서는 설교가 필요 없다. 잠깐 기다리다가 시간이 되면 버스를 타고서 내가 가야 할 곳을 향하여 떠나면 그만이다.

그런데 교회는 떠나는 곳이기보다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각 지체로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믿음의 삶을 함께 살다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하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겨울을 향하는 가을바람이 아스팔트 거리에서 낙엽을 휩쓸어가듯이, 정거장에 모였던 사람들이 사라져갈 때, “인생은 그런 것이다. 정거장은 그런 곳이다. 교회도 그런 곳이다” 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시대의 정거장 교회들은 아닌가?

가정이나 교회는 정거장이 아니다. 온갖 이벤트로 겉모습은 크고 굳건하게 보이나 내적인 관계와 생명력은 날로 힘을 잃어가는 정거장 같은 교회들은 바로 그 내적인 믿음의 관계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
정거장처럼 변해가는 교회, 성도들의 내적 관계를 상실해 가는 동안에 피상적인 홍보단체처럼 변해가는 교회들이 진정한 내적 관계 회복을 통하여 교회다운 공동체로 변화되어야 우리의 미래가 밝은 것이다.
정거장이 아닌 생명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회복하려는 열정이 종교개혁과 추수감사 절기의 열매가 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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