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 끼치는 사업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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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 끼치는 사업가 되고 싶어요”
  • 현승미 기자
  • 승인 2010.08.12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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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젊은 나이에 성공 이룬 (주)대호가 대표 임영서 집사

미신동네에서 어머니의 기도로 성장
음식문화, 선교적 측면으로 결합시킬터

중학교 때부터 ‘성공’의 목표를 세우고, 앞만 보며 달려왔다. 학창시절 아르바이트부터 안 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직업군을 접했다. 그리고 이제 갓 40줄에 들어선 그에게 ‘최연소’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을 정도로 성공한 젊은 기업인으로 손꼽히게 됐다.

프랜차이즈 전문기업 (주)대호가 대표 임영서 집사(세월전원교회·김일택 목사). 그는 경제 불황에도 시대가 요구하는 웰빙에 전통을 접목시킨 ‘죽이야기’, ‘육회달인’, ‘미스터빈대떡’ 등의 외식사업을 잇따라 성공시키고 있다.

“경기도 양평 깊은 산 속의 가난하고 무식한 집에서 태어났어요. 어려서부터 이 가난과 무식이 너무 싫었지요. 그래서 중학생이 되던 해에 마음먹었지요. 무조건 가난과 무식은 제 세대에서 끝내겠다고 말이에요.”

그는 이 결심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 떡장사, 군고구마 장사, 신문 배급 등 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뛰어 들었다. 장사하느라 학업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그는 육상 특기생으로 타지역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다시 양평으로 전학을 와야 했다. 고등학교에서도 그는 오직 돈을 벌어야 한다는 하나의 목표에만 집중했다. 고등학교를 마친 후 간신히 전문대학에 입학한 그는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첫 사업이 부동산이었다.

“그 다음해에는 노원동, 상계동에서 프리미엄을 받고 분양권을 넘기는, 이른바 ‘딱지 장사’를 하게 됐어요. 어린 나이에 돈을 엄청 벌었어요. 세상에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었죠. 돈이 최고인 줄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실수로 사람을 상하게 했어요. 그때 제 인생에 큰 변화가 왔죠.”

이북 출신의 아버지와 충청도 출신의 어머니가 자리 잡고 5남매를 길러낸 양평 산속마을은 미신과 불교가 창궐한 동네였다. 그런데 어머니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몸이 안좋으셔서 누울 자리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는데, 어느 날 시장에 가셨다가 누군가 나눠주는 전도지를 받으셨대요. 며칠 후 꿈에 누워계시다가 산에서 빛을 받고 깨어났는데, 한 남자가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대요. 그런데, 그분이 바로 전도지에서 봤던 예수님이셨대요. 그때부터 어머님은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셨어요. 가뜩이나 외부에서 들어온 집안이라 동네 사람들이 달갑지 않게 바라봤는데, 교회까지 다니기 시작하면서 동네에서 더 핍박 받았지요.”

그야말로 미신동네에서 크리스천 1호가 된 것이다. 어머니를 핍박하는 세력은 동네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의 눈총을 견딜 수 없었던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다 부수며 교회에 다니는 어머니를 협박했다. 그러나 고통과 좌절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어머니를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는 제가 고2때 돌아가셨는데, 살아있는 동안 기도만 하셨어요. 저를 위해서는 항상 현명한 아들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죠. 저도 초등학교 때 주일학교 다니면서 신앙을 갖게 됐지요.”

그러나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어머니,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됐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의 삶은 점점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머니의 빈자리는 새어머니로 채워졌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거기에 갑작스레 들어온 목돈은 그를 탕자의 길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됐습니다. 하늘산 기도원으로 들어갔지요. 처음에는 몸을 숨기기 위해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한 여류 작가인 목사님이 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어머니가 갈구하고 기도하던 하나님을 찾았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제가 다치게 한 그 사람만 살려주시면 신학교에 가겠다고 서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 역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성결대에 입학했다. 등록금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학교 다니면서도 계속 장사를 했다. 산본 우리들교회에서 교육 전도사로 직분을 감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4년을 마치고 졸업을 하면서 하나님은 그에게 큰 기회를 주셨다.

“종로에서 분식집을 할 때였어요. 돈 벌면 일정부분만 이익금으로 남기고 누나나 친한 친구한테 가게를 차려주고는 했었는데, 프랜차이즈를 알게 됐죠. 내 돈 들여서 내가 차려주는게 아니라 노하우만 있으면 사람들이 오히려 돈을 갖고 나를 찾아오겠더라고요.”

그는 바로 일본 유학길을 떠났다. 일본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꽃 팔고, 치킨 팔고, 가게를 몇 개씩 운영했다. 아니 그것 또한 그에게는 공부였다.

“일본에서 랭귀지 스쿨 다닐 때 학교에서 10년 넘게 일한 선생님들도 한 달에 13만엔 정도 받을 때였는데 전 그들의 3배 이상의 수익을 벌었죠.”

그의 사업 수완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어졌다. 부동산 사업을 통해 많은 돈을 벌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다시 한번 붙드셨다. 부동산으로 번 재산을 제주도 온천 개발에 투자했다가 모두 잃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서 그들이 우상숭배하고 싸움했는데도 하나님이 붙잡아주셨던 것처럼 저에게도 적절한 매를 주셨던 것 같아요. 어머니를 일찍 데려가셨던 것도 모두 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셨죠.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제 끼를 믿고 나쁜 길로 갔을지도 몰라요. 아들에게 지혜와 현명함을 달라고 했던 어머니의 기도가 큰 힘이 됐죠.”

횟수로 5년, 만 3년을 꼬박 약수동 산동네에서 보내야했다.
“뭘해도 안 되더군요. 아이들이 아픈데도, 약값이 없을 정도였어요. 그전에는 항상 자신감 넘치고 거만하고 그랬는데, 당시 제가 골고다언덕이라고 불렀던 계단에서 제 유일한 재산이었던 노트북을 꿇어앉고 매일 2시간씩 울었지요. 그리고 그 언덕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저는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저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많은 이들에게 무료로 돈 버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요.”

성공하면 10명의 경영자를 세우겠다고 하나님께 다시 한번 약속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창업 컨설팅을 시작했다. 그의 창업 컨설팅 강의는 점점 단순한 영리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도 자연스럽게 전파할 수 있는 전도의 장으로 이어졌다.

그는 하나님께 약속한대로 슈퍼바이징부터 소매관리론 등 후배들에게 자신이 가진 지식을 전수해주고 있다. 매일 아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직원들은 물론 프랜차이즈 사업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교육도 하고 있다.

“제가 교만해지려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연단을 주시는데, 얼마 전 건강만큼은 자신있던 제가 갑자기 쓰러져 정말 죽다 살아났어요. 하루 3시간씩 자면서 공부하고 일했는데, 그러면서 신앙적인 것을 많이 등졌던 것 같아요. 더 큰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연단이었기 때문에 기적처럼 살아날 수 있었죠.”

젊은 나이에 많은 걸 이뤘지만, 여전히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는 임영서 집사. 세상적 성공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다는 그는 자신의 고향마을에 몸과 마음을 치유받을 수 있는 ‘힐링 센터’를 세울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업도 선교 사업을 위해 활용할 계획이다. 2013년까지는 글로벌 프랜차이즈로 거듭나고, 이후 바이오상품을 개발해서 음식문화를 선교적 측면에 결합할 포부를 갖고 있는 그는 곧 자신의 신앙과 성공이야기를 담은 책도 발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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