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차이 믿음 안에서 대화로 극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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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차이 믿음 안에서 대화로 극복했어요.”
  • 현승미 기자
  • 승인 2010.05.11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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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시집 와 행복한 다문화 가정 이룬 ‘달린 조이 카투토’ 씨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고 한 가정을 이룬다. 그러나 평생 서로를 섬기겠다는 다짐은 이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만다. 치약 짜는 방법부터 시작해 모든 생활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한동안 내홍을 겪어야 한다. 뿐만 아니다. 거기에 상대를 통해 인연을 맺은 새로운 가족관계, 특히 새로운 부모를 만나게 되면서 때론 갈등이 더 고조되기도 한다.
 

같은 언어와 문화를 사용해도, 너무나 다른 서로의 모습에 가정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여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오히려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어 좋다는 아름다운 부부가 있다.
 

스물 셋. 대학을 채 졸업하기도 전에 한국인 남성 조길환 씨를 남편으로 받아들인 필리핀 여성 달린 조이 카투토 씨. 오직 남편 하나만을 의지한 채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으로 와서 그야말로 토끼 같은 자식들을 셋씩이나 낳고 산지 11년이 넘었다. 그리고 그에게 지난 6일 한국기독교가정생활협회가 선정하는 가정평화상을 수여됐다.
 

“아버지가 목사님이셨는데, 우연히 TV를 통해 교회에서 합동 결혼식을 올려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어요. 그땐 통일교가 뭔지도 몰랐었죠. 그냥 교회가 해주는 거니까 믿음이 갔죠. 그때 막연하게 한국 남자와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됐어요.”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다른 팀들과 함께 조길환 씨가 필리핀으로 건너와 2박3일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한 달 뒤 필리핀에서 합동 결혼식을 하게 됐다. 그리고 다시 두 달 뒤 카투토 씨는 낯선 땅 한국에 발을 디디게 됐다.
 

귀하게 키운 막내 딸을 멀리 타국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던 카투토 씨의 부모는 결혼을 반대 했다.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 만난 이를 믿고 나서는 딸이 걱정스러웠다.
 

“너무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말도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르고, 거의 3년 정도는 제대로 된 삶을 살 수가 없었어요. 처음 1년은 울기만 했어요. 하지만, 제가 선택한 길이기에 중간에 그만 둘 수도 없었습니다. 결혼을 반대했던 부모님 역시 이미 한 가정을 이루었으니, 이제는 끝까지 가정생활에 책임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솔직히 하나님 안 믿었으면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의지할 곳이 교회밖에 없었죠. 물론, 남편도 많이 도움이 됐어요. 하지만, 저와 시어머니 사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지요.”
 

음식조차 입에 맞지 않았다. 딸보다 며느리와 더 친한 필리핀 문화와 달리 한국의 시어머니는 너무 무서웠다. 타국에서 시집 온 며느리에서 친절하게 대해주시기는 커녕 매일 잔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제 스스로 맘 다지고 신앙으로 극복했지만, 아마 혼자서는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친정 부모님이 못난 딸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주셨지요. 서로 언어가 달라 어려움이 있었지만, 교회에서 통역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그 가운데 남편도 제가 한국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힘이 돼 주었지요.”
 

마침 카투토 씨와 비슷한 환경의 필리핀 친구가 가까이 살고 있어 서로 의지하며 기댈 수 있는 동반자가 돼 주었다.
 

그렇게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던 카투토 씨에게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3년 전 새벽일을 마치고 오토바이로 퇴근을 하던 남편이 택시와 부딪쳐 중상을 입었다. 2년 여 동안 꼬박 병상에 누워 꼼짝 못하는 남편의 간병을 해야 했다. 초등학생인 두 딸과 아직 어린 아들 세현이도 돌보는 것도, 혼자 계시는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것도 모두 카투토 씨의 몫이었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간 이식수술까지 받아야 했지만, 남편이 이렇게 걸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정말 절망적이었어요.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었거든요. 사실 모두가 살면서 행복하길 원하잖아요.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움을 알아야 한다고, 연단을 통해 저희를 더욱 굳건히 세워주시잖아요. 그런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교회에서도 많은 분들이 기도해주셨어요.”
 

평생 약을 먹어야 하지만, 아직 일을 할 수도 없지만 카투토 씨 가족은 집안의 가장인 조길환 씨가 함께 먹고, 말하고, 걸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했다.
 

윤희, 유순이, 세현이 삼남매에 시외숙의 네 살 난 아들까지 거두면서도 매일 행복이 넘치는 카투토 씨 가정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부모님이 신혼여행 중에 버려진 아이를 입양했대요. 그때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인데, 우리 다섯 자녀가 세상에 나올 때 이미 ‘오빠’가 존재했죠. 시외숙이 베트남 여성과 결혼했는데, 어느 날 행방불명이 됐어요. 부모님이 ‘오빠’를 입양했듯이 시외숙의 아이도 당연히 제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부모의 기도아래 굳건하게 성장한 것처럼, 자신의 아이들도 믿음의 자녀로 키우고 싶다는 카투토 씨는 매일 밤 잠든 아이들 머리맡에서 한 명, 한 명을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 한다.
 

“찬양과 기도만큼 좋은 교육은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가족 간에 서로 많이 이해해줘야 남들도 우리를 인정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사과 할 줄도 알아야 하고, 서로의 잘못을 감싸줄 수도 있어야죠.”
 

다르기 때문에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보완해주고 사랑으로 감싸안아줄 수 있다는 달린 조이 카투토 씨. 그는 어렵고 힘든 삶 가운데에서도 매순간 ‘감사’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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